법원 "윤리적 비난 받을 수 있지만 임신은 본능의 발로"
1천억대 자산가와 사이에 생긴 아기를 낙태하는 조건으로 50억원을 요구한 내연녀가 공갈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A(여)씨는 2004∼2005년 등산모임에서 만난 B(남)씨와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B씨는 자신과 회사 소유의 토지 가격만 공시지가로 1천억원이 넘는 자산가였다.
A씨는 2008년 임신했다. 아이를 낳고 싶었던 A씨는 이듬해 임신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B씨에게 임신한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B씨는 낙태를 요구했다.
A씨는 B씨와도 잘 아는 중개인을 내세워 협상을 벌인 끝에 50억원을 받고 낙태하기로 합의했다. A씨는 협상 도중 B씨가 금액을 낮추려 하자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A씨는 약속대로 아기를 지웠다. 그러나 B씨는 낙태를 확인하자마자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B씨는 A씨를 공갈 혐의로 고소했지만 법원은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9부(김주현 부장판사)는 A씨의 항소심에서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돈을 갈취하기 위해 협박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임신은 협박 의도와 무관한 자연스러운 본능의 발로로 볼 수 있다"며 "B씨가 먼저 돈을 조건으로 낙태를 요구하기 전까지는 임신을 이유로 돈을 요구한 적이 없는 점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