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회사가 투자손실은 물론이고 장래 발생할 보험사고의 시기나 보험금 규모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보험회사는 예상 보험금에 대해서는 소비자로부터 보험료를 받아 적립한 책임준비금으로 대응하지만 보험회사의 예상을 벗어난 보험금이나 투자손실에 대해서는 보유한 자본으로 그 손실을 보전할 수 있어야 소비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금융감독당국은 보험회사에 최소한의 준비금 적립(준비금규제)과 충분한 자본 보유(자본규제)를 요구하는 재무건전성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보험회사가 한편으로는 최소한의 준비금을 적립할 만큼 충분한 보험료를 소비자로부터 받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한 자본을 보유하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재무건전성 규제는 시장경쟁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보험회사가 자유롭게 보험료를 결정하고 시장에서 활발하게 가격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되, 금융감독당국은 재무건전성 규제를 통해 터무니없는 보험료로 경쟁 질서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보험회사에 최소한의 준비금 적립을 요구해 부실한 보험료 책정을 억제하고 자본규제에 미달하는 보험회사를 시장에서 쫓아내 건전한 경쟁 환경을 조성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보험회사 재무건전성 규제에는 보험료, 준비금, 자본에 관한 균형 잡힌 접근이 요구된다.
그런데 현재 추진 중인 자본규제 강화 일정에는 충분한 보험료와 충분한 자본 중에서 충분한 자본만이 강조되고 있다. 자본규제 강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보험료가 제대로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금리위험에 따른 충분한 자본 보유는 강조되지만 금리 인하에 상응하는 보험료 인상은 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보험회사에 대한 자본 확충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 보험료를 받아 이익이 창출되고 자본이 늘어나리란 기대를 하기 힘든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저금리 심화 등 장래 위험에 대비한 보험회사 재무건전성 규제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저금리에 대비할 수 있는 보험회사 이익-자본성장 경로의 지속성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보험료 규제가 자본 규제와 병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충분한 보험료가 과도한 보험료로 이어질 가능성을 금융감독당국이 걱정하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는 시장경쟁에서 걸러지도록 하자는 것이 가격 자유화와 함께 최소한의 준비금을 적립하고 충분한 자본을 보유하라는 재무건전성 규제의 도입 취지다. 그동안 보험료 규제는 위험보장 서비스의 대가인 사차익보다 사업비에서 더 많은 이익이 발생하는 이익 구조로도 나타나고 있어 해지환급금 등과 관련한 소비자 민원 및 보험 불신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보험산업의 평균 지급여력비율은 300%를 넘는다. 이는 보험회사의 부실 여부를 판별하는 지급여력비율 100%의 3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제는 보험회사의 자본량뿐만 아니라 자본을 관리하는 보험회사의 위험관리능력에 대한 정성규제가 강화될 시기다. 국제적으로 위험관리능력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는 여러 나라의 감독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에 비하면 국내에서의 논의는 미미한 실정이고, 재무건전성 감독은 여전히 자본규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보험료 인상 억제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개별 보험회사의 위험관리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성규제를 강화해 자본규제와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한편 재무건전성 규제 강화는 중소형사의 위축과 대형사의 시장 지배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재무건전성 규제가 본래 의도한 시장경쟁 촉진과 배치되는 결과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에서 보험료, 준비금, 자본 규제에 관한 균형 잡힌 로드맵이 제시되어야 규제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시장경쟁은 활성화되어 소비자는 보험금 지급불능에 대한 우려에서 벗어나 시장경쟁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