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첨단 전자통신 기술을 가진 나라, 그 나라의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래서 하루는 직원 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왜 이대로 두고 있냐고. 대답은 이랬다. 그렇지 않아도 2년 전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래서 지난해 논의를 했고, 그 결과 내년에 교체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2년 전에야 문제가 제기돼? 그리고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해를 넘겨 논의를 해?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보며 그때 일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당시 던지곤 했던 질문도 함께 떠올랐다. “일본이 지닌 의제 설정 능력이나 정책 역량, 즉 의미 있는 문제를 의제로 만들고, 이에 대해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능력은 어느 정도 될까?”
유감스럽게도 예나 지금이나 크게 긍정적이지 않다. 이것저것 배울 게 많은 나라이지만 이 점에 있어서 만큼은 아닌 것 같다. 오늘과 같이 변화가 심한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집단 문화가 강해서일까? 의미 있는 많은 문제들이 의제나 고민거리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책을 주도하는 정치권을 보면 그런 생각은 더 강해진다. 파벌주의에 특정 이해관계 집단과의 유착, 강한 보수성에 대중영합주의, 그리고 미래 비전을 갖추지 못한 리더십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의제를 설정하고, 그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모색할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우리 수출이 타격을 받는다는 정도의 걱정이 아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체질을 강화하는 쓴 약이 될 수도 있다. 정작 큰 걱정은 잘못된 판단에서 시작된 정책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행여 실패해 아시아뿐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재정질서와 금융질서가 다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만 홀로 성할 수 있을까.
아닌 게 아니라 국채금리가 오르면서 아베노믹스에 문제가 생겼다. 돈을 풀어 금리를 낮추겠다던 의도와 정반대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GDP의 240%에 이르는 국가 부채가 있는 나라. 1%의 금리 상승은 GDP 2.4%에 달하는 이자를 더 부담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미 연간 재정적자는 GDP의 10%, 국가예산의 50%를 오르내리고 있다. 걱정이 없을 수 없다.
또 있다. 국채금리 상승은 국채가격의 하락을 의미하고, 이는 다시 이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내 은행과 기관의 손실을 의미한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는 전체의 약 92%, 금리가 1% 상승할 때마다 이들이 입을 손실은 우리 돈으로 70조원에 이른다. 행여 이러한 손실이 부실로 연결된다면. 그래서 이들이 밖으로 내보냈던 돈을 회수하게 된다면. 그 돈을 쓰고 있는, 또 그 돈을 쓰고 있는 나라에 물건을 팔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문제가 없을 수 없다.
국채금리가 계속 상승할 것이란 이야기도, 아베노믹스가 실패할 것이란 이야기도 아니다. 결과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 자리에서 문제 삼는 것은 일본의 낮은 정책역량 그 자체다. 제대로 된 판단에 입각한 결정이 아닐 수 있으니 위험도도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이번 경우도 그렇다. 제대로 된 나라였다면 양적완화 조치 이전에 국가부채 문제와 이를 위한 세금 인상을 먼저 의제로 삼았을 것이다. 이 문제가 완화되지 않는 한 경기회복을 위한 어떠한 정책도 위험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 문제를 뒤로한 채 양적완화와 같은 불완전한 정책으로 일본의 운명뿐만 아니라 주변국과 세계경제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판을 벌이고 있다.
우리로서는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고 더 치밀하게 대응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우리 사회와 우리 정부, 그리고 우리 정치권은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