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미국 CEO들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 민태성 국제경제부장

입력 2013-05-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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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성 국제경제부장
그는 당당했다. 미국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중진 상원의원들과 기자들 앞에서도 그는 굽힘이 없었다.

물론 모양새는 좋지 않았다. 명색이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호령하는 거대 IT기업의 수장이 탈세 혐의로 의회 청문회에 섰다는 것 자체가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니까.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얘기다.

미국 상원 상설조사위원회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애플이 조세피난처인 아일랜드에 셸컴퍼니를 세우고 이익을 옮기는 행태를 일삼았다고 밝혔다. 쿡은 다음날 청문회에 섰다.

미국에서 회계 처리했다면 내야 할 세금을 4년에 걸쳐 440억달러나 빼돌렸다니. 한화로 50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큰 사안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지금 전 세계는 탈세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아닌가.

사사건건 으르렁거리던 미국 여야도 한목소리를 냈다. 칼 레빈 민주당 상원의원은 애플이 탈세의 성배를 추구하고 있다고 했고, 공화당 소속의 존 매케인 의원은 애플을 미국의 ‘최대 세금 회피자’라고 꼬집었다.

학계에서도 ‘애플 때리기’가 한창이다. 에드워드 클라인버드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애플에 대해 ‘상상을 초월한 철면피’라고 표현했다.

쿡은 탈세에 대한 비난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지난해 애플이 미국 기업 중 최대 규모인 60억 달러의 세금을 납부했다고 강조했다.

쿡은 나아가 애플의 이익 중에서 해외 사업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는데, 이익의 3분의 1 가량을 세금으로 내라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세제는 산업시대의 낡은 잣대라면서 디지털 시대의 기업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미국은 송금세라는 명목으로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본국으로 보낼 때 35%의 세율을 적용한다. 1000원을 벌었다면 350원을 세금으로 고스란히 내야 한다는 말이다

쿡이 청문회에 선 날, 월가에서도 스타 CEO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됐다. JP모건체이스의 주주총회에서 제이미 다이먼 회장 겸 CEO의 겸직이 결정된 것이다.

JP모건체이스의 주주들은 이날 CEO와 회장직을 분리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찬성표는 32.2%에 그쳤다. 금융위기 사태 이후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에 대한 비난이 높아졌지만 이 회사의 주주들은 양호한 실적을 올린 다이먼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다이먼은 주총을 앞두고 회장직을 빼앗긴다면 회사를 떠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효율적인 경영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옷을 벗겠다는 것이다.

미국 CEO들이 이처럼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주주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안기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철저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뒤를 캐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이 스타 CEO들이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배경이다.

요즘 재계의 화두는 CJ그룹이다. 사법당국은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조성 규모가 5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SK와 한화그룹의 오너가 실형을 선고 받은 상황에서 CJ그룹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벌 살생부’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민주화도 좋고 창조경영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재벌’로 상징되는 불투명한 경영 행태를 바로 잡는 것이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기업들도 엔론 사태를 비롯해 천문학적인 회계부정 사건이 있었고, 금융위기의 주범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포춘 500대 기업 중 30% 이상이 가족경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어도 비자금 조성이 이슈가 됐던 적은 거의 없다. 사외이사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면서 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재계에 대한 사정 바람도 미국에서는 보기 힘들다.

최근 분위기만 놓고 보면 그룹의 회장이든 대표든 법정에 출두할 기업인을 또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가 법정에 서게 된다면 과연 당당할 수 있을까.

미국이라는 나라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청문회에 서는 기업인이 당당할 수 있는 문화는 부럽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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