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출구가 없다]‘헌 집’ 주고 ‘새 빚’ 얻은 뉴타운… 엎으려니 매몰비에 허덕

입력 2013-04-0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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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개발호재 노렸다 하우스푸어로 전락… 정부·지자체, 해제구역 매몰비 놓고 ‘네탓공방’

안정적 투자처로 인식되며 주택시장을 선도하던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조속한 사업 진행을 기다리던 주민들은 어느덧 사업을 취소해 달라는 성난 민원인으로 바뀌었다. 투자수익은 고사하고 사업 자체가 불투명한 곳도 적지 않다. 불협화음이 끝이 없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꼬인 가장 직접적 요인은 집값이다. 끝없이 오르기만 할 줄 알았던 집값이 수년째 하락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사업이 한창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을 본 터라 주민들의 상실감은 더 크다.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사라졌다. 사실상 헌 집 주면 새 집 주는 사업이 아니라 수억원을 들여도 제값을 못 받는 애물단지 사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들이 최근 건설사의 입찰 참여 부진과 조합의 밀어붙이기식 기존 사업방식에 대한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며 사업이 사실상 멈춰 있는 상태다.

▲박근혜정부의 첫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가 예정된 1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양지웅 기자)
사업비 1조원 규모의 매머드급 사업장인 강동구 고덕주공2단지는 최근 재건축을 맡은 시공사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시공사 입찰이 두 차례나 유찰되면서 조합은 최근 사업방식을 지분제에서 도급제로 변경하는 등 대폭 완화해 3차 입찰에 나섰다. 기존 사업방식으로 택했던 확정지분제 방식에 대해 건설사들이 기피하면서 현실에 맞는 사업방식을 택한 것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지분제 사업은 건설사가 일반분양을 책임지는 구조여서 미분양이 발생하면 손해를 건설사가 떠안아야 한다”며 “요즘처럼 분양을 했다 하면 실패로 이어지는 분위기에서 도급제에다 검증된 사업방식이어야 겨우 입찰에 나서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시행주체와 주민 간 갈등으로 사실상 재건축 사업이 중단된 곳도 나오고 있다. 최근 강남의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일부 주민들의 소송으로 인해 파행을 겪고 있다. 잠실주공5단지는 추진위원장이 운영규정에 정해진 득표를 하지 못해 법원으로부터 무자격 판단을 받아 직무가 정지됐다. 은마아파트도 운영규정 위반으로 추진위원장 직무가 정지됐다. 신반포2단지의 경우 시공사 선정 무효 판결을 받으면서 시공사 선정을 다시 해야 한다.

강영진 중원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절차적 하자 등 법정 분쟁이 표면적 이유지만 내면적으로 조합원 간 이권을 둘러싼 갈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며 “대규모 재건축사업일수록 집행부 선출부터 조합원 간 대립이 많다”고 전했다.

재개발·뉴타운 시장의 한계점은 재개발 아파트의 일반분양 미분양, 사업성 없는 구역의 재개발 출구 전략 등이 맞물려 있다. 마찬가지로 경기침체가 사업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1월 뉴타운 출구전략이 발표된 이후 서울시내 뉴타운·재개발 정비(예정)구역 중 주민 스스로 사업해제를 결정한 곳은 모두 8곳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추진주체가 없는 정비(예정)구역 163곳 가운데 주민 의견을 청취한 곳은 14곳이며, 이 가운데 8곳이 사업해제를 결정했다. 의견청취 등 실태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정비구역이 222곳에 달해 앞으로 해제수순을 밟는 구역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매몰비용에 대한 처리다. 해제구역에 대한 매몰비용 산정이 어렵고, 특히 조합 단계 사업장에서는 한 푼도 지원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매몰비용 지원 여부에 대해서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뉴타운 매물비용에 관해 중앙정부가 이를 부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혀 당장 획기적 해법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돼 일반분양에 나서는 사업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분양성이 없다고 판단해 시공사들이 일반분양 가격을 낮게 책정할 것을 조합에 요구하면서 일반분양이 연기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6개월 이상 일반분양이 지연되고 있는 왕십리뉴타운1·3구역이 대표적이다. 분양가를 내리면 그만큼 조합원들의 분담금은 높아져 조합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공사들이 1000억원대 미분양 대책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왕십리뉴타운3구역의 경우 시공사가 미분양대책금 1300억원을 요구했다. 조합이 확정한 3.3㎡당 1900만원대의 일반분양 가격이 미분양 우려가 커서 별도의 공사비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재건축·재개발 등 시장 출구전략을 조속히 내놓지 않으면 시장 정상화 자체가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사실상 서울 등 주요 도시 노후단지에 대해 재건축·재개발 등 기존의 정비방식에 대한 방안 제시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특히 개발호재를 보고 투자했다 가격 하락으로 이른바 하우스푸어로 몰린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를 병행한 출구전략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주먹구구식 사업방식을 탈피해 새로운 도시재정비사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명 부천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업 초기부터 전문가에 의한 총체적 사업 마스터플랜 작성과 사업비 계획을 도출해 이를 기반으로 정확한 사업성 분석을 해야 한다”며 “조합 운영비와 조합원 분담금 등에 대한 투명한 정보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이어 “민간 의존적 기존의 도시정비 방식을 공공성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를테면 도시정비 개발 후 발생할 재산세 수입을 담보로 공공이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는 ‘조세담보금융(TIF)’ 제도 도입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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