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잣집에서 배운다]정경분리 원칙, 권력·금력·명예 동시에 가질 수 없어

입력 2013-01-28 15:23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우리나라 재벌그룹으로 불리는 대기업들의 대부분은 1960~1970년대 국가 주도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관치경제의 산물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업인에게 정치와 관계를 맺는 것은 당쟁이 심했던 조선시대도 그렇지만 지금도 기업의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부자가 3대 가기 힘들다’는 옛말은 부자들이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더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으나 반대 정권이 권력을 잡았을 때는 역풍을 맞는다는 의미와 통한다. 이런 점에서 약 500년 가까이 12대에 걸쳐 상생경영으로 부를 유지한 경주 교촌 최부잣집은 현대 사회지도층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부잣집은 1대 최진립 장군(1568~1636년)부터 12대 최준(1884~1970) 선생에 이르기까지 12대에 걸쳐 깨끗한 부를 강조했다.

이강식 경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깨끗한 부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이지만 경주 최부잣집은 이를 가훈으로만 내세우지 않고, 실제 상생경영을 잘 실천해 명가 경영을 이끌었다”며 “이렇게 장기간 한 집안이 부를 유지한 사례는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최부잣집은 실제 사례로 존재하는 만큼 부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이 한번쯤 살펴봐야 하는 과제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최부잣집 가훈인 6훈 중에서 제1훈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는 현대적 의미에서 정경분리를 의미한다. 이 말은 지식과 교양은 열심히 공부하되 권력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는 말이다. 현대로 보면 지나친 정경유착을 피하고 권력을 탐하지 말라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 최부잣집은 과거에 합격해 최소 양반 입문 자격인 진사, 생원 신분은 유지했지만 실제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고 경제활동에만 전념해 자신들의 부를 500년 가까이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시대는 당쟁이 심해 벼슬길에 오르면 어쩔 수 없이 당쟁에 휘말려 누가 정권을 잡는가에 따라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부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어려웠다.

현대에 와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잠깐 신흥재벌이 나왔다가 오래 못 버티고 사라지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심지어 탄탄한 대기업도 한순간에 공중분해 되는 사례도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정경분리 원칙이 왜 중요한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이 교수는 “과거시험을 보아 합격을 한다는 것은 유학 공부를 하며 지식을 축적하고 다른 지식인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며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야만 지식정보 경영을 할 수 있고, 남보다 빠른 판단과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소양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가훈은 오랫동안 내려온 속언에서 ‘권력과 금력, 그리고 명예는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경험칙을 볼 때 소중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최부잣집은 금력을 중심으로 명예를 소중히 지키며 상생경영을 통해 오랫동안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근대사를 통해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벌들의 비자금 축적이나 불법 대선자금 조사로 많은 기업인이 구속되는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권말에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유착으로 인해 큰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각 분야 사회지도층이 자신의 본분을 벗어난 권력을 탐하다가 결국 그 권력이 족쇄가 돼 무리수를 두다가 사회의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사례도 자주 나타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사회 지도층부터 권력을 탐하지 않고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기업인은 권력에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하고, 정치인은 부를 탐하지 않아야 존경 받는 사회지도층으로서 제대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차기 정부인 박근혜 정부도 그동안 공약으로 강조한 ‘따뜻한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의 독버섯인 정경유착 문제는 꼭 근절해야 한다.

최부잣집도 최근 이 원칙이 깨졌다고 한다. 마지막 최부잣집을 지킨 최준 선생의 손자인 최염씨의 아들이 판사로 재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염씨의 아들이 사법고시를 본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 고집을 꺾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7차례에 걸쳐 사법고시에 응시했으나 매번 낙방하자 최염씨가 조상들의 묘를 찾아 간곡히 청을 올린 끝에 합격했다고 한다.

최염씨는 아들이 판사직에 올랐으나 자신의 사업은 그후 몰락했다는 점에서 최부잣집의 교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큰 손 美 투자 엿보니 "국민연금 엔비디아 사고vs KIC 팔았다"[韓美 큰손 보고서]②
  • 실리냐 상징이냐…현대차-서울시, GBC 설계변경 놓고 '줄다리기'
  • 강형욱, 입장 발표 없었다…PC 다 뺀 보듬컴퍼니, 폐업 수순?
  • “바닥 더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엔화값에 돌아온 엔테크
  • 항암제·치매약도 아닌데 시총 600兆…‘GLP-1’ 뭐길래
  • 한화 에이스 페라자 부상? 'LG전' 손등 통증으로 교체
  • 비트코인, 연준 매파 발언에 급제동…오늘(23일) 이더리움 ETF 결판난다 [Bit코인]
  • '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영장심사…'강행' 외친 공연 계획 무너지나
  • 오늘의 상승종목

  • 05.23 14:28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5,726,000
    • +0.07%
    • 이더리움
    • 5,217,000
    • +1.3%
    • 비트코인 캐시
    • 701,000
    • +0.65%
    • 리플
    • 729
    • -0.27%
    • 솔라나
    • 244,800
    • +0.62%
    • 에이다
    • 670
    • +0.3%
    • 이오스
    • 1,178
    • +0.86%
    • 트론
    • 165
    • -1.79%
    • 스텔라루멘
    • 154
    • +0.65%
    • 비트코인에스브이
    • 91,400
    • -1.4%
    • 체인링크
    • 22,700
    • -0.09%
    • 샌드박스
    • 634
    • +0.3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