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강 혁 부국장 겸 산업부장 "박근혜 당선인과 재계총수의 ‘상생대화'"

입력 2013-01-0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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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財界) 언어가 사라졌다. 생각과 다른 말을 한다. 절실한 말은 없고 립 서비스만 많다.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을 덕담만 건넨다.

신년사가 그랬고 박근혜 당선인과의 첫 만남 대화도 그랬다.

기업의 신년사는 경영환경을 설명하면서 각오와 비전을 담는 메시지다. 신년사를 읽으면 기업의 1년 경영활동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신년사는 예년과 달랐다. 방점이 제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찍혀 있었다. ‘경쟁’ ‘생존’ 이란 단어가 ‘동행’ ‘상생’ 으로 바뀌었다. ‘기업’ 보다는 ‘사회’ ‘이윤’ 보다는 ‘책임’을 강조했다. 심지어 한편의 설교로 착각을 할 만한 신년사도 있었다.

방점이 찍힌 내용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것 또한 기업이 사회를 위해 실현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처절한 경영환경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피땀 어린 해법이 뒷전에 물러나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인의 말이 왜 사라졌을까. 이유는 자명하다. 박 당선인과 새 정부에 코드부터 맞추려다 보니 본분을 잊어버린 것이다.

재계는 박 당선인의 첫 행보에서부터 주눅이 들었다. 박 당선인은 의도적으로 중기중앙회를 먼저 방문하고 경제인연합회를 찾았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여러분들이 활짝 웃으시는 게 제 소원”이라고 한 반면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사진을 찍으면서는 “저만 웃고 있는 것 같네요” 라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 그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얘기다.

박 당선인의 경제철학도 재계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이윤창출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한편으론 신규고용을 늘려달라고 얘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정리해고 자제를 부탁하는 등 경영적 판단으론 이율배반적인 요구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율배반적이고, 비경영적인 요구사항일지라도 무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논의의 대상이라면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관철시킬 건 관철시키고 수긍할 건 수긍할 텐데 분위기가 그렇지 못하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답답함을 감추고 따라가야 하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오죽하면 전경련의 수장(首長) 조차 “잘못된 관행은 고치겠다”고 미리 꼬리를 내렸을까.

그만큼 상생이나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뭇매를 맞을 수 있다는 비정상적인 기운이 재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재계를 향한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 기업인은 기업인의 말을 하는 게 우선이다. 기업인으로서 말을 하고 그 말을 실행에 옮기고, 그 말에 책임을 질 때 사회적인 역할도 다할 수 있다. 분위기가 무서워서, 대세에 거스르지 않기 위해 기업가의 입을 닫는 건 국가를 위해서나 기업을 위해서나 도움이 안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권력을 쥐고 있는 쪽에서 기업가가 자유롭고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뤄질 때 상생경영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소기업 대통령’ 이 되겠다고 공언하며 간접적으로 대기업에 압력을 가한 박 당선인의 행보는 대인(大人)답지 못하다.

박 당선인과 만난 재계 회장들은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옥동자 같은 회사를 팔았거나 팔아야 하는 회장이 있는가 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될까 노심초사 하는 오너도 있다. 업황이 좋지 않아 해외투자 계획을 접어야 하는 경영자도 있다. 잘 나가고 있다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그 또한 쫓기고 있다는 스트레스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른 시일 내에 30대 그룹 회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할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불통(不通)이란 비판’이 잘못된 판단이란 생각이 들 수 있도록 그 때는 박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이 서로의 고민과 요구를 진지하게 나누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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