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세계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러브레터’

입력 2012-09-27 11:02 수정 2012-09-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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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등을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일본인들에게 쓴 러브레터가 화제가 되고 있다.

러브레터는 다름 아닌 ‘재팬 인 어 데이(Japan In A Day)’. 전세계 네티즌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그의 신작이다. 동일본 대지진 1주년인 지난 3월11일 일어난 개인들의 일상과 회상을 엮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세계 12개국에서 8000건의 동영상을 모아 300시간에 달하는 영상을 일일이 짜깁기해서 탄생했다. 내달 20일 개막하는 25회 도쿄 국제영화제에서 특별 오프닝을 기다리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그 어떤 재난 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실제 대재앙을 주제로 한 만큼 일본인에 대한 연민이 강하게 묻어난다는 평가다. 재팬 인 어 데이의 제작과 총지휘를 맡은 스콧 감독은 “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만든 러브레터”라고 고백하며 이 작품에 대단한 애착을 나타냈다. 동일본 대지진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일본인들의 애환을 잊지 않은 훈훈한 모습이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대지진 발생 직후 각국 정부와 기업, 국제기구로부터 받은 구호의 손길에 대한 기억이 깡그리 지워진 것 같다. 적어도 최근 독도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를 보면 그렇다. 올해로 수교 40주년을 맞은 중국과의 외교 관계는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의 관계도 이미 벌어질 데로 벌어졌다.

일본 내부 상황이 어수선해 과거의 은혜에 배은망덕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치자. 현재 일본에선 대지진 피해 복구는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경제는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제조업계는 대지진 후유증과 엔고로 만신창이가 돼 해외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여기다 유럽 채무위기와 미국과 중국의 경기 둔화도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본 경제를 옥죄고 있다.

대지진이 정치를 바꿀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작년 대지진 참사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위정자들이 초당파적으로 단합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컸으나 현상은 실망 그 자체다.

회전문처럼 총리가 교체되는 상황도 변함이 없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지지율 침체로 일본에선 대지진 후 세 명째 총리가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54년 만에 탈환한 정권을 불과 3년 만에 다시 내어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기 불황에다 대지진으로 신음하는 일본 유권자들에게 소비세율을 두 배로 올리자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었나 보다.

자칫하면 스콧 감독이 만든 재팬 인 어 데이가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할리우드의 거물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 한 친일파 인사의 우스운 러브레터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건 역사건 해피엔딩을 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동일본 대지진 2주년에도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본은 현재의 모든 것을 리셋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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