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김원식 코스닥협회 상근부회장 "甲과 乙의 관계"

입력 2012-08-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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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식 코스닥협회 상근부회장
어떤 이는 세상이 온통 갑(甲)과 을(乙)의 관계로 이뤄졌다고 한다. 갑과 을은 본래 육십갑자(六十甲子) 중 천간(天干)에 해당하는 열 개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단위다. 그 천간이 자(子), 축(丑), 인(寅), 묘(卯) 등 열두 개의 지지(地支)와 순차적으로 어울려서 갑자(甲子), 을축(乙丑) 등 예순 개의 조합을 이루게 된다.

물론 소위 ‘갑을관계’는 이 육십갑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이나 사물이 여럿 있을 때 각각을 갑, 을, 병과 같은 방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의 갑, 을은 가리키고자 하는 대상의 등장 순서에 따라 임의로 붙이는 명칭일 뿐이다.

계약을 체결할 때 어느 한 쪽을 갑으로 약칭하면 나머지 다른 상대방은 을이 된다. 일을 맡기는 계약당사자를 갑으로, 그 일을 받아 수행하는 계약당사자를 을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을 맡기는 쪽이 계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서 주도권을 갖게 된다. 일을 맡기는 계약당사자는 계약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더 나아가서는 계약의 상대방을 선택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서 갑을관계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계약당사자의 한 쪽을 갑으로, 다른 편을 을로 간단히 줄여 부르던 것에서 출발하여 힘이 있고 없음을 나누고, 지위가 높고 낮음을 구분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요즘은 심지어 ‘슈퍼 갑’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관계를 떠나서 비즈니스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또 그 관계가 늘 대등하다고 할 수도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세상만사가 전부 갑을 관계라는 주장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무겁다. 말은 세태를 반영하는 법이다. 갑을관계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안고 있는 갈등과 그로 인한 폐해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위해 법에 근거를 두고 위원회까지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른바 갑을 관계에 있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수많은 관계의 그물 속에서 갑이기만 한 존재는 없다. 이곳에서 갑이 다른 관계에서는 을의 지위에 놓이기도 한다. 우리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질수록 세상사가 복잡해질수록 그런 현상은 더 많이 일어난다. 또 한 번 갑이 영원히 갑으로 남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갑에게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물론 이 말은 갑을 관계의 제일 말단에서 갑의 위세에 눌려 허덕이는 이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을의 처지를 이해하는 갑의 시혜에 기대기만 한다면 을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관계의 역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계의 다변화를 위한 노력은 해야 한다. 기업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나의 거래처에 ‘다 걸기’(All-in)를 해서는 위험하다는 뜻이다.

을이 없는 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란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갑남을녀(甲男乙女)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 갑론을박(甲論乙駁)이 필요한 어려운 지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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