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윤식 "'돈의 맛' 어떤 맛이냐고? 모욕적인 맛이지"

입력 2012-05-29 15:54 수정 2012-05-2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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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임영무 기자
백윤식은 어느덧 데뷔 40년을 바라보는 노년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서 노년을 찾지는 않는다. 20대 못지않은 에너지가 넘친다. 그는 ‘동년배우 중 가장 잘 팔린다’는 말에 “잘 알면서 뭘, 그냥 감사한 마음뿐이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여유를 보였다. 그동안 작품 속 ‘쎈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동네 아저씨의 모습이랄까. 프랑스 칸으로 떠나기 얼마 전 그와 만난 기억의 한 편이다.

지난 27일 칸 영화제가 폐막했다. 기대를 모았던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은 수상에 실패했다. 하지만 전 세계 22개 작품만이 이름을 올리는 경쟁부문에 들어갔다.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 심장부에 얼굴을 알린 그다. 노년의 배우에겐 그야 말로 다시 오기 힘든 복이 아닐까.

▲사진 = 임영무 기자
‘돈의 맛’ 개봉 전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백윤식은 해외 나들이에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원래 칸은 임 감독의 전작인 ‘그때 그 사람들’을 통해 경험할 뻔했다. 하지만 당시 몰려드는 시나리오로 인해 레드카펫 세리머니는 불발됐단다. 결국 임 감독과 다시 만났고 기어코 칸 입성을 이뤄냈다. 오롯이 백윤식의 덕은 아니겠지만 ‘돈의 맛’ 속 윤 회장의 모습을 보자면 경쟁부문 진출이란 타이틀이 ‘소 뒷걸음질에 걸려 든’ 행운은 절대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돈의 맛’ 속 윤 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캐릭터 설명보단 영화의 주제인 돈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백윤식은 “원래 돈이란 긍정적인 제도 아래서 탄생한 도구 아닌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온갖 나쁜 일이 발생한다”면서 “돈에 대한 욕심은 정말 없다. 하지만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돈 창고’ 장면에서 솔직히 소품인 것을 알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돈더미에 이상한 생각이 들더라”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런 돈더미 속에서 평생을 허우적댄 윤 회장이지만 ‘돈의 맛’이 어떤지를 알게 된 뒤 미련 없이 돈을 떠나는 모습을 보인다. 백씨(윤여정) 집안의 사위로 들어와 집안의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해왔고 결국 돈의 노예가 된 자신의 모습에서 ‘모욕’을 찾아낸다. 실제 영화에 백윤식의 대사 중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바로 이 ‘모욕’이다.

▲사진 = 임영무 기자
그는 “영화 속에서 ‘윤 회장’은 내레이터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면서 “영작(김강우)에겐 거울 같은 존재가 바로 윤 회장이다. 그가 말한 ‘모욕’. 글쎄 영화를 본다면 분명 ‘모욕’이 말하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만약 자신에게 실제 윤 회장 같은 삶이 주어진다면 영화 속 결정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백윤식은 주저 없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 역시 영화 속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아니냐”면서 “누구에게라도 할 수 있는 결정이다. 윤 회장이라고 가정한 뒤 생각해봐라. 그 나이에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돌아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바로 앞서 말한 ‘모욕’이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말꼬리를 물어봤다. 그는 “더 살아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라며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더했다.

▲사진 = 임영무 기자
‘모욕’이란 코드로 좀 더 몰아가봤다. 함께 출연한 윤여정은 실제 아들보다도 어린 김강우와 강도 높은 정사신을 소화했다. 촬영 전 윤여정의 항의에 임 감독은 “(관객이) 불쾌하라고 넣은 장면”이라며 설득했단다. 물론 백윤식은 극중 하녀로 나오는 필리핀 여배우 마우이 테일러와 더 쎈 노출을 선보였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데뷔 첫 올 누드를 감행했다. 아들 나이의 스태프들 앞에서 알몸을 들어냈으니 모욕적이지 않았을까.

그는 “모욕적이랄 게 뭐 있나. 연기니깐 하는 것뿐이다”면서도 “노출신이 쉽지 만은 않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어렵지만 또 다시 제의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까. 백윤식은 “뭐 책(시나리오)을 좀 봐야 하지 않겠나”라며 에둘러 이번 노출신이 어려웠음을 토로했다.

▲사진 = 임영무 기자
그는 인터뷰 내내 푸근하면서도 쿨 한 모습으로 아들 또래 기자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했다.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쿨 하다’는 질문에 “원래 격식을 싫어한다. 집에서는 목 늘어난 속옷과 반바지 차림으로만 있는다. 내가 젤 싫어하는 게 넥타이 매는 것”이라며 웃는다.

충무로에서 가장 잘 팔리는 60대 배우 백윤식. 칸 영화제 뒤 그의 가치는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게 뻔하다. ‘돈의 맛’ 속 그의 연기를 본 해외 영화 관계자들의 러브콜도 기대해 봄직하다. 그는 “몇 년 전 미국의 한 감독이 캐스팅 차원에서 날 만나러 들어온 적이 있었다. 실제 그 영화에 출연이 성사될 뻔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사진 = 임영무 기자
백윤식은 “이젠 이 나이 정도 되니 그런 행운은 기대하지 않는다. 무리해서 일에 다가서고 싶은 마음은 없다. 매 순간이 감사하다. 칸에서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쪽이든 난 감사한 마음뿐이다”고 말했다.

‘돈의 맛’ 윤 회장이 나직하게 읊조린 ‘모욕’. 현실 속 백윤식의 모습에선 결코 찾을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자신에게 없는 그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낸 노년의 배우. ‘거장의 연기’란 바로 백윤식의 연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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