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절체절명의 과제 ‘생존’]‘오늘 아닌 미래’초점…불확실성 제거로 위기 선제 대응

입력 2012-05-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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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계열사도 과감히 정리

생존을 위한 기업의 몸부림은 단순히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이 아니다. 적자 계열사나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몸통 격인 주력 계열사 매각까지 불사하고 있다. 생존을 목적으로 아예 그룹의 체질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성장성 정체 등으로 자금사정이 악화되면서 기업들이 ‘본업 수성’보다는 ‘미래 성장’에 전략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조조정과 신규 사업을 통해 미래 생존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업들이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는 유동성 함정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이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유동자금을 확보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불확실성을 제거하겠다는 의도다.

재계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의 출발은 핵심사업”이라면서 “핵심사업을 정리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이 높다. 본업 포기라는 리스크 만큼 실패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특히 흉내에 그칠 경우 기업 이미지 타격 등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두산그룹은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다. 두산그룹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맥주회사를 주축으로 한 소비재 기업이었다. 그룹 매출의 70%를 OB맥주 등 소비재가 차지했다. 그러나 그룹 100주년을 1년 앞두고 지난 1995년부터 구조조정에 돌입, OB맥주와 음료사업 부문 등을 매각하고 잇따라 중공업 기업을 인수해 사업 구조 자체를 바꾸었다.

현재 두산그룹은 글로벌 인프라지원사업 기업으로 위상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1998년 3조4000억원이던 매출은 2011년 25조2000억원으로 8배 가량 증가했다. 소비재 매출 비율은 같은 기간 70%에서 10%로 줄었고, 해외매출 비중은 12%에서 62%로 늘어났다.

▲두산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OB맥주를 매각함으로써 소비재에서 중공업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한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다. 사진은 두산타워(왼쪽)와 동양그룹 사옥.
지난 4일 한양대 최고경영자 과정 포럼인 ‘글로벌CEO포럼’에 연사로 나선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두산의 구조조정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며 “OB맥주라는 브랜드와 맥주공장과 같은 실체를 지키려고 했다면 오늘날 두산그룹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이 두산을 ‘과거’에서 ‘오늘과 미래’로 바꾼 장본인이다.

생존을 위한 두산그룹의 체질개선 모델은 현재 웅진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대로 엿보인다.

웅진그룹은 그룹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웅진코웨이를 매물로 내놓는 큰 승부수를 던졌다. 임대고객 수만 330만명에 달하는 웅진코웨이는 국내 정수기 시장의 선두 기업이다. 웅진그룹 7개 주요 계열사 매출의 36%를 차지할 만큼 알토란이기도 하다. 때문에 예비입찰에 SK네트웍스, 롯데쇼핑, GS리테일 등 대기업들이 참여해 인수전격 예비후보로 선정돼 눈독을 들이고 있다.

웅진코웨이 매각에 나선 웅진그룹의 의도는 주력사업 재편이다. 웅진그룹은 1조원으로 예상되는 매각 대금을 태양광과 건설 부문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재무구조 개선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당장의 안정적인 캐시카우에 연연하기보다 그룹의 재무적 리스크를 해소하고 내일을 기약하겠다는 포석이라는 것.

실제로 웅진그룹은 극동건설 인수와 태양광 사업에 수조원 대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와 태양광 업황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주력인 시멘트 업종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동양그룹도 부채와 차입비용 문제해결을 위해 성장의 한 축인 핵심 계열사 동양생명을 대한생명에 매각키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양생명은 2009년 총자산이 10조원을 넘어서고, 2011 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당기순이익 1129억원으로 1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동양그룹의 알짜 계열사다.

지난해 초 보고펀드에 지분 44%를 매각, 그룹은 853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자금난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가시질 않아 결국 동양생명을 매각키로 한 것이다.

동양생명 매각이 지지부진했던 지난해에는 동양증권 매각설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파다했다. 그러나 이달 초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동양증권 매각은 절대로 없다”고 밝힘으로써 루머는 일단 진정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부실한 동양그룹의 재무 상황은 언제든지 추가적인 핵심 계열사 매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은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지난 2007년 금융 부문을 그룹의 성장축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그러나 동양생명을 매각할 경우 경영전략 전반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강원도 삼척에 건립키로 한 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 등 그룹 체질을 에너지 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키로 한 것도 그 일환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은 증권으로 축소하고, 미래 수익사업인 에너지에 집중할 것이란 분석이다.

조선·해운업의 장기불황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된 STX그룹도 주력 계열사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 STX그룹은 최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1조원대 자산매각을 위한 공동펀드 조성을 제안하는 등 다급한 사정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3일 발표한 계열사 지분 매각과 자산유동화 등을 통한 2조5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 방안 가운데 절반 정도를 산업은행의 힘을 빌어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STX그룹은 실질적 지주회사인 ㈜STX를 모체로 지난 2002년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지속됐던 성장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과 해운의 업황 부진으로 그룹 재무구조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무리한 사업확장 전략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STX그룹의 두 축인 조선과 해운 업황이 살아나지 않을 경우 재무개선 방안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200%가 넘는 부채비율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밖에 건설회사의 어려움으로 본업인 레미콘 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유진그룹도 그룹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마트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웅진그룹과 동양그룹의 경우 핵심 계열사 매각을 통해 각각 태양광 사업과 화력발전소 중심의 에너지기업으로 체질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 STX그룹과 유진그룹은 대체할 성장사업 발굴이 아니라 본업을 지키기 위한 가지치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화그룹도 호텔&리조트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화그룹이 ‘사실무근’이라며 부인공시를 냄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화그룹은 다양한 각도에서 그룹의 미래 청사진 수립 작업 과정에서 일부 주력계열사 매각이 포함된 시나리오도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매각과 검토라는 표현이 부적절하기는 하지만 그룹의 전체 모양을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바라보는 작업이 진행됐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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