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인하' 허와 실]제약업계 "53% 일괄 인하는 무리" 정부 "외국 가격 수준"

입력 2012-03-29 08:19 수정 2012-03-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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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매출 20% 감소…손실 커" 정부 "판매관리비 줄이면 충분"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과 제네릭 전문의약품 모두에 53.55%의 일괄 약가인하율을 적용하는 것은 근거는 무엇입니까. 약가인하 또한 장관 재량권을 벗어난 행위가 아닙니까?” 지난 27일 오후 서울 행정법원 201호 법정. 일성신약·다림바이오텍·에리슨제약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약가인하 고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의 제2차 심문 자리였다. 복지부는 가격을 내리는 전체 의약품 중 특허가 만료된 전문의약품에 대해서는 일반 의약품보다 훨씬 높은 53.55%의 인햐율을 적용했다.

▲지난해 8월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 정책에 반발한 제약회사 CEO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선 모습. 이는 114년 제약산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소송 대리인 법무법인 태평양은 “고시로 장관이 상한 금액을 정하는 것은 재량권 넘어서는 것”이라며 “수가단체와의 협상 의무조항을 담은 건강보험법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또 “개별 약제마다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특허만료된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약가 인하율을 일괄적으로 53.55%로 정한 것도 공정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도 반격에 나섰다. 복지부 측 대리인은 “53.55%라는 인하율은 외국의 약가와 현재 제네릭의 가격수준을 고려한 것”이라며 “이는 제약사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 반박했다. 과도한 판매관리비를 줄이면 약가인하로 인한 손실도 상쇄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일괄 약가인하가 장관의 재량권 일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복지부는 “재량권 범위 내 제도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고시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외부기관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된 것이며 최소한의 장관 재량만 행사했다는 설명이다.

이날 양측은 2시간여에 걸쳐 서로 주장을 펼치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약가인하의 타당성을 둘러싼 제약업계와 복지부와의 찬반공방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약가인하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기에 제약사들은 100년 사업경력에서도 유례없는 소송까지 불사하게 됐을까. 또 이에 대한 복지부의 대응 논리는 무엇일까.

◇ 제약사 “무차별적 일괄인하는 업계 말살정책”

제약업계는 이번 일괄 약가인하로 연간 1조7000억원의 손실을 떠안게 된다. 지난해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1조7000억원은 국내 제약산업 전체(14조3540억원)의 11.8%에 해당한다. 이는 업계 연간 총 영업이익(1조6000억원)보다 큰 규모다.

증권가에서는 상위사들의 매출액 손실은 연간 최대 1000억원에 달해 매출액 감소율이 20%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약가인하로 인한 손실이 이미 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제약사들은 일괄약가인하가 단순히 제약사들의 이익 감소에 그치지 않고 토종제약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당장 올 상반기부터 경영압박이 시작되면 현재 고용 유지도 어려워지고 연구개발(R&D) 투자와 우수 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한 선진시설 업그레이드 등에 나설 수 없게 된다”며 “이러한 충격은 결국 산업의 몰락으로 이어져 오히려 비싼 약의 수입에 의존하게 돼 보험재정의 안정적 관리도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 지적했다.

시기와 폭을 고려하지 않은 일시적인 약값 후려치기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업계가 그동안 무조건 반대가 아닌 산업 수용가능성을 고려해 2~3년간 단계적으로 인하해 줄 것을 여러 차례 정부에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용불안을 흡수하고 R&D 투자 확대 등 산업체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유예기간을 둬야한다는 이유에서다.

불법리베이트근절을 명분으로 한 일괄 약가인하에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리베이트 제공에 따름 소비자 피해액 2조원은 2007년 공정위가 내놓은 자료”라며 “2010년 말 쌍벌제 실시 이후 리베이트 규모는 당시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회나 학술지원, 영업사원 디테일 등 공정경쟁규약에 의거한 합법적 행위까지 리베이트로 과다하게 부풀려 약가인하의 근거로 삼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 복지부 “제약산업 선진화 위해 필수적”

보건복지부가 제약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압박카드와 당근책을 번갈아가며 약가인하를 강행하려는 이유는 약품비 절감을 통해 건강보험재정 적자 때문만은 아니다. 복제약 중심의 손쉬운 영업을 해온 국내 제약업계의 선진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약가인하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제약사들이 연구개발은 소홀히 한 채 손쉬운 복제약 판매에 매달려 왔으며, 과도한 판매관리비에 의존한 영업을 해 온 탓에 대부분이 영세성을 면치 못했다는 것이다. 완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 265개 중 1000억원 이상 생산업체는 35개에 불과하다(2009년 기준). 리베이트를 충당하는 판매관리비만 줄여도 약가 거품을 줄일 수 있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최희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관은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내제약사들의 판매관리비 비중이 제조업의 3배인 35.6%에 달한다”며 “복제약 중심의 영업경쟁으로 인한 리베이트 거래 관행은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약가인하로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고 신약개발 중심의 R&D 지원을 통해 제약사들의 체질개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아울러 약가인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정부는 주장한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33개 유럽국가 의약품 재정절감 정책’분석 결과를 통해 “지난 2010년 금융위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유럽국가들도 재정합리화를 위해 다양한 의약품 절감 정책을 시행해왔다”며 “그중에서도 약가인하는 가장 빈번하게 시행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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