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보자기의 깊은 정

입력 2012-03-1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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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영 수필가

명절 선물 보따리를 정리하며 특별하게 보자기에 싸인 물건이 더욱 귀히 여겨져 먼저 풀어 본다. 보자기의 네 귀퉁이에 복(福)자가 정성스레 수(繡)놓아진 황금색 보자기의 물건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기도 전에 일반 종이가방에 담겨진 물건보다 특별히 좋아 보인다. 이렇듯 물건을 보기 전에 보자기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미리 어느 정도 가늠 할 수 있도록 네모난 보자기는 그 천의 종류와 색상에 따라 대강 알 수 있게 된다. 보자기 안의 물건이 술병인지, 떡 바구니인지, 곶감상자가 들어 있는지를 보자기의 질감과 색상, 싸여진 모양으로 가늠이 된다.

보자기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다. 물건을 이동 시킬 때에도 보자기에 각종 물건을 담아 싸서 매어 머리에 이고 다녔다. 옛날에는 특별하게 이동 수단이 없었기에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던 박물장수의 보따리도 결국엔 보자기로 이뤄진 것이다. 지금도 일본이나 중국으로 오가며 물품을 수입하거나 우리나라 물건을 팔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따리장수’라고 일컫는 것도 아마도 보부상들의 보부상보(褓負商褓)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보자기의 보(褓)는 복(福)을 싸서 담는다는 의미로 격식이나 예의를 차릴 때에 더욱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자기는 당시 귀중했던 옷감으로 옷을 짓고 남은 천의 자투리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었다가 이것을 보자기의 재료로 사용했다. 여인들은 쓰다 남은 옷감 자투리로 알록달록 조화를 이뤄 조각보를 만들었으며, 이제는 시간이 흘러 특별한 보자기를 만들기 위해 예쁜 천을 구입하기도 한다. 여인의 한숨, 노고, 한땀 한땀 수 놓아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하는데 어릴 적엔 집집마다 안방 벽에 걸어놓은 옷들을 가려주는 횃대보 하나씩 쳐져 있었다. 그 커다란 옥양목 횃대보는 소나무도 하얀 학들이 노니는 산수화에, 목단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자수 등 안주인의 솜씨가 엿보이기도 했다.

60년대 국민학교 시절. 도시가 아닌 시골이어서인지 그때는 책가방을 든 아이들은 전교에 손꼽을 정도였다. 한결같이 네모난 보자기에 책을 싸서 여자아이들은 허리춤에 아기를 업듯이 매고, 남자아이들은 어깨에 사선으로 메고 다녔다. 보자기는 가볍고 물건의 모양 따라 외모도 바뀌는 특성을 지녔다. 둥근 것을 담으면 둥글고, 네모난 것을 담으면 네모난 모양이 난다.

시집살이를 할때 친정어머니께서 부산에 오셨다. 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어머니 옆에 쌓여 있는 보따리들이 먼저 눈에 들어 왔다. 분홍색 보자기로 싸여진 네모나고 둥근 보따리들을 보며 왈칵 눈물부터 솟았다. 서울서 부산으로 시집을 왔으니 멸치 젓갈향이 강한 부산의 김치부터 각종 반찬들이 입맛에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신 어머니가 여러가지 반찬을 준비한 것이다. 보자기속 사랑은 큰 보자기, 작은 보자기를 풀어 헤칠 때마다 딸이 좋아하는 새우젓만 넣은 심심한 배추김치, 검은콩조림, 장아찌, 멸치조림에서, 찰밥, 족발, 기름 바른 구운 김까지, 보물 한 개씩 쏙쏙 터져 나오듯 보자기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음식들이 부산에 없을 리가 만무하지만 엄마의 깊은 정이 담긴 사랑이리라.

◇안신영

△1994년 문화일보 신춘사계 봄 수필 당선 △부산 수필문학협회 활동 △부산 여성문학인회 활동 △부산 여성 우리들 문학동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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