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재벌해체론']5년마다 재연되는 레퍼토리…DJ·노무현 개혁도 '미풍'

입력 2012-03-1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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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맞은 정치권 때리기, 재벌해체론까지 등장

역대 정부와 정치권은 끊임 없이 재벌 개혁을 외쳤다. 취임 초 친기업을 천명했던 이명박 정부도 임기 말이 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대기업 옥죄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물가를 잡겠다며 기름값과 통신요금을 내리라고 기업을 압박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재벌의 빵집 등 골목상권 진출을 비판하기도 했다.

올해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공세가 더욱 거세다. 야당 뿐 아니라 여당까지 ‘대기업 때리기’에 가세했다. 폐지했던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의 부활과 재벌세 부과 등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재벌을 아예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역대 정권의 재벌개혁= 재벌 해체 등 재벌담론이 등장한 지는 벌써 30여년이 넘었다. 경제력집중의 방지를 중요한 정책목표로 내걸고 있는 공정거래법이 발효된 1981년 부터 재벌을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 됐다고 볼 수 있다.

역대 정권에서 가장 강력하게 재벌개혁을 추진했던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IMF 구제금융이 계기가 됐다. 대기업들의 무절제한 문어발식 확장이 구제금융 사태의 근본원인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진 덕분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이제는 시장이 재벌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라며 “저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하고 중산층 중심으로 경제를 바로잡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재벌해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대선에서 승리한 김 대통령은 유종근 대통령 경제고문 등이 IMF 실무진들과 협상하면서 김대중 캠프에서 그려왔던 재벌개혁안이 실현되도록 하는 방법 등을 고심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직접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의견을 나눴다.

그 결과가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은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보증채무 해소 △재무구조 개선 △업종 전문화 △경영자 책임강화 등 5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또 1999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2 금융권 경영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 및 부당내부거래 억제 △변칙상속 차단 등 3개 원칙을 내세웠다. 이것이 김대중 정부 재벌정책의 상징인 ‘5+3’ 원칙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재벌의 선단식 경영을 끝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사실상 ‘재벌해체 선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벌의 상호출자,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고 독립된 기업으로 따로 서야 한다며 재벌 개혁에 앞장섰다. 그러나 두 사람이 대통령직을 걸고 추진했던 재벌개혁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재벌이 우리사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는 데 있다. 적어도 5년에 한번 씩 벌어지는 재벌해체 논의와 재벌 때리기는 대기업의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글로벌 경쟁력 저하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차의 성공 신화는 협소한 국내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승리한 결과다. 이를 통해 세계 곳곳에 한국의 강함을 알리고 있다. 사진은 현대차가 자동차를 수출하기 위해 선적하는 모습.
◇선거의 해… 강도 높이는 정치권의 재벌 때리기= 올해도 예외없이 정치권은 ‘재벌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각종 공약과 정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출총제 부활과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보완, 재벌세 도입, 일감 몰아주기 근절 등을 꼽을 수 있다.

출총제는 1987년 4월 계열사 간 과도한 출자로 대규모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편중을 억제하고 계열사 간 동반부실화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1998년 2월 외환위기로 외국 기업들이 국내 ‘알짜’ 기업들을 대거 사들일 위험에 처하자 폐지했다.

이후 2001년 4월 출총제 대상 그룹들의 출자비율(순자산 중 다른 기업에 출자한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8년 29.8%에서 2001년 35.6%로 높아지자 같은 해 4월 출자총액상한을 순자산의 25%로 보완해서 재도입했다.

그러나 2009년 3월 국회가 출총제를 폐지하는 관련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다시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다.

이처럼 도입과 폐지가 반복됐던 출총제를 또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게 최근 정치권의 행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경우 법률에 명시된 일정한 기준에 따라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하고 있고, 이들 분야에 대기업의 신규 참여를 원칙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해 주는 제도다.

재벌세란 대기업이 계열사를 많이 거느릴 때 과세 부담을 대폭 늘리자는 방안이다. 대기업이 자회사에서 받은 주식 배당금을 소득에 포함하거나, 대기업이 대출을 받아 자회사 주식을 살 때 대출 이자를 세법상 ‘비용’ 항목에서 제외해 세금을 물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들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전문가들은 외국기업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할 때 중소기업 업종 지정 등의 방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외국계 기업의 진입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임원혁 KDI 실장은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정하는 것보다는 대기업과 그 대기업이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기업을 합병하도록 하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희범 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재벌세, 대기업집단기본법, 재벌해체론 등이 논의 되는 등 최근 대기업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높다”며 “지나친 규제는 기업의 역동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순환출자 금지, 재벌해체 주장까지= 최근 재벌개혁 이슈는 출총제에서 순환출자로 넘어가고 있다. 출총제 부활로는 부족하니 순환출자제도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결국 재벌을 해체하자는 얘기다. 순환출자 금지를 강력하게 얘기하는 곳은 통합진보당이다. 민주통합당도 순환출자 구조를 3년 내에 바꾸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순환출자는 재벌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도 수십 개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다.

20대 대기업 그룹 중에는 삼성, 현대차그룹, 롯데, 현대중공업, 한진, 한화, 동부, 현대그룹 등이 순환출자구조다. 재계 서열 6위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대주주가 그룹을 지배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로 이뤄져 있다. 현대차는 기아차 지분 33.8%를 갖고 있고,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9%,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0.8%를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몽구 회장 일가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현대차 지분 5.14%에 현대모비스의 현대차 지분(20.8%)을 활용해 총 25.9%의 지분으로 현대차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

결국 순환출자를 금지할 경우 재벌 오너십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 환상형 고리를 끊기 위해 지분을 팔 경우 그룹이 산산조각 떼어질 수도 있다. 사실상 현대차그룹 등은 해체 수순을 밟아야 한다.

이에 대해 대기업은 억울해 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순환출자 구조를 갖게 된 것은 완제품에서 부품·원자재까지 모두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왔기 때문이다. 경제개발 초기 당시 정부는 부품·원자재 국산화를 명분으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촉구했고 그 과정에서 순환출자구조가 생겨났다는 얘기다.

비용도 문제다. 삼성그룹이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20조원 이상의 현금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서는 이건희 회장 가족이 별도의 지주회사를 설립한 뒤, 삼성생명·전자 등 상장 계열사 지분을 20% 이상 확보해야 한다.

현재의 재벌 구조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위력 때문에 순환출자 금지는 재계에 가장 위협적인 개혁방안이다.

순환출자 금지는 과거에도 여러 번 논의됐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재벌이 해체되면 한국 경제가 망가질 수 있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외국에서는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특별한 규제는 없다. 일본은 도요타자동차그룹, 독일 도이치뱅크그룹 등도 순환출자구조다.

경제전문가들은 “재벌개혁은 다들 공감하지만 이 때문에 경제가 파국에 이르는 것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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