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인류 '카르페디엠族']"즐기며 살자" vs "뭘 해도 안돼"

입력 2012-03-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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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모은 돈으로 여행이나 갈래…쥐꼬리 월급으로 저축? 술이나 마셔

“내일 걱정은 내일하자”며 오늘을 즐기며 살 뿐이다. 청년실업과 양극화 등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사는 88만원 세대들은 자조감이 섞인 목소리로 “난 오늘만을 산다”고 얘기한다.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노력으로 희망찬 미래를 설계할 수 없기에 현재를 즐길 수 밖에 없다. 패배주의가 낳은 기형적 현재주의자의 모습들이다.

반면 탄탄한 직장에서 나름 인정받으면서 집도 좀 사는 일부 30대들은 자유의지로 “카르페디엠!”을 외친다. 자신이 번 돈을 당당하게 쓰며 스스로 현재를 즐긴다. 당장 경제적으로 어렵진 않다. 하지만 높은 문화적 욕구와 지나친 소비지향주의 탓에 미래에 대한 대비는 88만원 세대나 매한가지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로 ‘오늘’만을 사는 이들은 카르페디엠족이다.

◇“나는 선택형 카르펨디엠족”이다

# 올해 서른세살이 된 자칭 골드미스인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얼마전 그만뒀다. 마케팅 부서에서만 6~7년 근무하다 보니 반복되는 업무는 점점 지겨워졌다. 평소에도 퇴근하기가 무섭게 드럼 강습이나 라틴댄스 동호회로 직행하다보니 일에는 관심이 멀어지고 취미활동이 더 소중해졌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직장 내 경쟁도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에라 모르겠다, 때려치자”. 당장 생계를 위해 일에 딱 목숨걸 필요도 없었기에 바로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모아둔 돈도 좀 있고 목돈이 급할 땐 부모님이 마련해 준 전세금으로 충당하면 그만이다.

화끈하게 회사에 사표를 내던지면서 내가 꿈꾼 것은 캐나다 어학연수다. 말이 영어공부지 사실 여행이나 즐기다 올 생각이다. 이만큼 일했으니 이쯤해서 인생의 쉼표를 한번 찍어줄 필요도 있겠다 싶다. 퇴직금을 미리 정산해보니 2000만원 가까이 됐다. 최근 명품 가방을 사느라 빚진 카드론 대출금 300만원을 갚고도 잘만하면 1년쯤은 거뜬할 것 같다. 경력 단절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한살이라도 어릴 때 인생을 즐기자는 생각 뿐이다.

여자 나이 33. 이제 노처녀 소리도 들을법한 나이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육아 부담에 아까운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채 집에만 있는 친구들을 보면 안쓰럽기만 할 뿐이다. 워킹맘 친구가 말하길 갓 돌된 아이 하나에만 200만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지금 누리는 경제적 풍요로움(?)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저 결혼은 남의 얘기로만 치부하고 싶어진다.

# 나는 직장생활 1년차 게임프로그래머다. 20대의 끝자락에 있어 요샌 그저 가는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나는 사무실 내에서 슈트룩을 즐기는 댄디가이로 통한다. 내겐 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집도 그래야 했다. 학교 근처 원룸에 살다가 최근 강남의 회사 근처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부모님이 마련해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80만원 짜리다. 매달 적지 않은 집세가 부담스럽긴 하다. 하지만 편리하고 쾌적한 주거환경만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나름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조금 늦은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보상심리 때문이었을까. 입사 한달만에 신차를 할부로 샀다. 국민연금과 세금 등을 뗴고 한달에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280여만원.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항상 통장 잔고는 바닥이다. 자동차 할부금과 보험료 60~70만원에 기름값, 주차비 등까지 하면 100만원은 훌쩍 넘는다. 월세 80만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생활비로 쓰고 나면 저축하기는 빠듯하다. 사실 늘어나는 카드값도 조금 걱정이긴 하다. ‘품위유지’를 위해 명품을 사느라 카드빚에 허덕이는 럭셔리푸어족이 늘고 있다는데 내 얘기가 아닌가 싶다.

난 명품 매니아다. 하지만 인터넷몰에서 품질 좋고 가격이 싼 옷이나 디지털 기기 등을 득템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쇼셜쇼핑 사이트를 드나들다 지름신이 강림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고민이긴 하다. 그래도 당장 갖고 싶은 물건을 포기할 순 없다. 형들을 보면 나도 빨리 돈을 모으고 결혼하고 싶다. 하지만 3년은 더 내야할 자동차 할부대금에 지금의 소비 습관으로는 1000만원 모으기도 막막할 따름이다. “결혼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할 수 있겠지?”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포기형 카르펨디엠족”이다

#가장 아름다운 나이 26세. 현재 내 삶이 가장 아름다운지 모르겠으나 대학 때보다 더 팍팍해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난 대학 졸업 후 정규직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서울 중위권 대학을 졸업했고 토플 고득점을 보유했지만 대기업의 장벽은 너무 높았다.

결국 내 특기를 살려 번역일을 시작했다. 번역 일은 정규직이 없었다. 다만 ‘정규직 대우’가 존재할 뿐이었다. 경력이 없는 프리랜서는 월 30만원에서 100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받았고 그 마저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난 내 경력을 4년차라고 속이고 일을 시작했다.

보통 번역가는 번역회사에 소속돼 월 120~130만원을 받는다. 일이 없을 경우는 급여가 아예 없다. 방세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나는 벌이가 끊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2개의 회사에 등록해 일을 했다.

월 수입 200만원. 돈이 있으면 자유로워질 것이라 믿었다. 이 자유를 위해 다른 자유를 포기해야 했다.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에 번역일이 들어오면 집에 들어와 작업에 집중했다. 대학 때 좋아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원서를 읽고 싶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북한, 환경 등 돈이 되는 영어 문서만 읽어야 했다. 종종 3일 내 번역을 마쳐야 하는 일이 들어오면 나는 먹는 것, 자는 것을 뒤로 미뤄야했다.

이렇게 돈을 벌지만 버는 돈의 약 25%는 자취하는 방세로 나갔다. 무려 25%. 한 달 교통비와 식비, 통신비, 관리비 등 고정 지출을 모두 포함하면 대략 100만원이 훌쩍 사라졌다.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90만원의 돈이 남지만 돈을 모으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학자금 대출 이자로 매달 15만원이 자동이체 된다. 원금 상환을 앞당기기 위해 남는 돈의 일정액을 추가로 넣을 생각이다.

전에는 돈이 없어 무언가를 할 자유가 없었다. 지금은 돈(일)을 위해 내 자유가 구속돼 책 한 권 읽기 힘들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경제적 자유를 위해 내 자신의 자유를 구속한 셈이다. 이 희생마저 내가 선택한 자유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집을 사거나 가정을 만드는 것은 너무 벅찬 일이다. 몫돈을 위해 또 내 자유를 구속하는 대신 이젠 즐기는데 더 충실하기로 했다.

# 그는 혼자 서울에 올라왔다. 집이 너무 가난해 보증금도 혼자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잠만 자는 방을 구했다. 그래도 월세로 30~40만원이 꼬박꼬박 나간다. 식비, 교통비, 통신비 등이 빠지면 손에 쥐는 것은 1~20만원.

그는 일하면서 돈을 모은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힘들게 일을 하지만 생각하는 만큼 돈을 벌기 힘들고 현실적으로 모아봤자 얼마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돈 모으는 것을 포기했다. 잠 자고, 먹는 것을 포기하며 일을 했는데 또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다시 참으며 돈을 모은다는 것은 너무 가혹했다. 희망이 없으니까 남는 돈으로 술 마시고 있는 대로 돈 다 쓰고 없으면 유흥비를 빌린다.

혹자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라고 조언한다. 나는 386 세대처럼 성장하면서 정치적인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촛불시위는 성장한 다음에 경험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무력하다는 생각을 한다. 난 더 이상 정치를 믿지 않는다. 정치적 목소리가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보다 현재의 삶을 달래줄 수 있는 유흥이 내 도피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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