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대선 '정치 격변기'…"새 라인을 잡아라" 특명

입력 2012-03-05 07:50 수정 2012-03-0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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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로비 핵심 '대관팀'-유력인과 친분 쌓고…정부 국정 방향에 영향 끼치기도

# 대기업 그룹에 근무하는 C상무는 최근 여의도를 다녀온 후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큰 칭찬을 들었다. 한 달여 전쯤 보좌관을 통해 여당 실세 의원에게 건넨 정책 제안서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챙겨 국회를 다녀 온 것이다. 세 번째 추가 요청 자료다. 이쯤 되면 정책으로 채택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한 때문다.

C상무는 유사한 자료를 야당 실세 의원 보좌관에게도 건넸다. 그러나 야당 쪽에서는 가타부타 소식이 없다. 조만간 편한 자리를 마련해 제안 배경에 대한 부연설명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여야는 강도 높은 경제개혁을 외치며 각종 정책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C상무는 개혁의 방향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정책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의원실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재벌개혁 방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처 손쓸 틈 없이 무차별적으로 터져 나왔지만 말만 무성할 뿐 아직 결정된 정책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의 역할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요즘 그의 가방에는 이와 관련한 자료들이 들어있다. 계열 연구소에서 작성한 이들 자료는 반재벌 여론을 잠재우면서도 그룹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재벌개혁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아직 반응이 없는 야당용 추가 자료는 다섯 차례에 걸쳐 건넬 수 있도록 따로 준비해 두고 있다.

C상무가 근무하는 기업은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이다. C상무는 주력계열사의 대외협력팀 소속으로 재벌 정책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팀장이다. 정부 부처를 드나들며 구체적인 경영현안을 챙기는 부하직원들과 달리 C상무는 굵직한 현안을 중심으로 일을 하고 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여의도에 기업 대외협력팀, 일명 대관팀 소속 임직원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장악 시도 등 반재벌 정서가 확산돼 강도 높은 재벌개혁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들 대관팀들은 비상상태다.

소리소문 없이 여의도 곳곳을 누비는 이들은 주된 임무는 정치권의 동향 탐지와 각종 정보수집. 여기에 선거를 앞둔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력 후보와의 핫라인도 확보해야 한다.

이때 그룹 임직원을 동원한 인맥이 최대한 활용된다. 국내 재벌그룹들은 시기는 차이가 있지만 과장급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매년 한 차례씩 인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학연과 지연 등 친분 정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이들 인맥은 대관팀이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돼 관리된다. 재벌그룹의 로비채널을 거미줄로 비유하는 이유다.

그러나 대관팀 소속 임직원들은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출입증을 받아 청와대와 정부 청사, 국회를 출입하지만 활동은 언제나 음지에서 이뤄진다. 대관팀이 기업의 로비부서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기업 역시 대관팀 운영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의도 여부를 떠나 불쾌감부터 나타낸다.

대관팀의 활동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상시관리 차원’과 ‘긴급사태 대응’이 그것이다. 특별한 현안이 없어도 영향력 있는 정치권과 정부의 인사들을 꾸준히 접촉하며 친분을 유지한다. 식사와 술, 골프 접대에다 각종 상품권 등으로 성의를 표시하며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상시관리다.

반면 긴급사태 대응은 소속 기업 관련 사안이 터졌을 때 소속 기업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때를 대비해 상시관리 차원의 활동은 대관팀의 일상적이면서, 예비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선거를 앞두고 반재벌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에는 상시관리와 긴급사태 대응력이 동시에 강조된다. 이 시기의 활동 폭과 내용에 따라 임기내 소속 기업의 명운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삼성그룹 대관팀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소위 ‘강원도 3인방’으로 불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과 막역한 관계를 구축했던 삼성은 인수위 시절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400여 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를 제출, 참여정부의 국정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2만 달러론’과 ‘산업 클러스터(집적단지) 조정 방안’ 역시 삼성의 입김이 반영된 정책으로 평가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김영삼 정부 시절의 ‘국제화’ 논거를 제시한 것은 물론 김대중 정부 시절 정책 입안에도 기초 논리를 제공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삼성그룹이 대관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대외협력파트를 ‘그룹의 안위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 그룹 대관팀 관계자는 “정치권과 정부 관계자들은 현장 실무에 약하다”며 “정책 개발에 필요한 전문적인 데이터의 대부분은 기업으로부터 나온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특히 이 관계자는 “대관팀을 통해 기업이 제공하는 데이터가 암암리에 해당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음은 당연하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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