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부러진 화살'이 말하는 사법부의 실체란?

입력 2011-12-21 16:23 수정 2011-12-21 19:48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정지영 감독이 누구인가. 데뷔 30년차 노장으로, 1992년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실상을 잔인하리만치 파헤친 영화 ‘하얀전쟁’의 감독이다.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 한국 영화 산업의 고질적 병폐인 구조적 모순을 깨트리기 위해 싸움꾼을 자처한 영화인이다. 그런 그가 현장으로 돌아왔다. 꼭 20년 만이다. 그리고 다시금 사회적 문제에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댔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다.

지난 10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초청 상영 당시 관객 및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13분간의 기립 박수를 받은 작품이다. 대체 어떤 영화일까. 영화는 2007년 대한민국을 문자 그대로 뒤집어 놓은 한 대학교수의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이 모티브다. 잠시 이 사건을 살펴보자.

사건 당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교수지위 확인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2006년 1월15일 항소심 재판장 박모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발사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올해 1월 만기 출소했다. 지금도 김 교수는 진실 규명을 위해 싸움을 지속 중이다.

영화가 말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정 감독은 ‘부러진 화살’로 진실 규명보단 은폐를 통한 기득권 사수에 혈안인 현 사법부의 오만과 독선을 그리고 자기모순을 꼬집는다. 그 방법이 실로 통쾌하다 못해 묵은 체증을 씻어 낼 정도다

우선 영화는 팩트와 픽션의 혼형 스토리다. 실제 김명호 교수는 김경호(안성기), 현실 속 김 교수 변호를 맡은 박훈 변호사는 박준(박원상), 석궁 테러 당사자인 박모 판사는 박봉주(김응수)다. 여기에 드라마적 요소를 위해 신문사 사회부 기자 장은서(김지호)가 더해졌다.

영화의 기본 전제는 강자와 약자의 대립이다. 강자는 사법부, 약자가 김경호다. 힘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완벽히 기울어진 상황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 방법은 하나다. 약자인 김경호의 일반화다. 일반화란 관객들의 공감대를 말한다. 약자를 더욱 약하게 만들어 강자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방법을 버렸다. 오히려 일반화의 정 반대로 그 모순의 실체에 접근한다.

‘부러진 화살’의-김경호는 사회 통념상 ‘소통불가의 인간’이다. 영화적 해석을 더하면 ‘원칙과 신념’ 지키는 인물이다. 쉽게 말해 ‘적당히’ 또는 ‘중간만 하자’는 사회 일반화의 대척점에 서 있다. 결국 그 점이 영화 속 김경호의 현실을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감독은 그런 점이 모순의 실체이자 문제라고 말한다.

김경호는 학교 측의 잘못을 지적하고 학교는 명예 실추를 우려해 김경호의 입을 막으려 든다. 자기 고백 또는 자기모순을 털어놓을 경우 잃게 되는 나름의 기득권 상실이 무서운 거다.

결국 학교 측 눈밖에 난 김경호는 교수직 상실 후 법원 소송을 통해 부당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법원은 학교 측 손을 들어 준다. 연이은 패소에 김경호는 무시된 원칙을 지키고자 담당 판사에게 석궁을 겨눈다.

이어진 법정 장면에서 법은 피가 묻은 옷을 증거로 김경호의 살해 위협을 주장하지만 반대로 김경호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이 과정이 흥미롭다. 김경호는 자신의 논리 주장을 가로막는 판사나 검사 심지어 자신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에게 마저 호통을 친다. 김경호의 독불장군식 성격에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결국 노동전문 변호사 박준이 사건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법정 드라마의 형태를 띈다.

‘부러진 화살’은 우리 사회 질서 체계 기준점을 판단하는 사법부가 정의와 진실의 저울추만이 아닌 계획적 의도의 새로운 무게추로 나름의 사회 질서를 재단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언급한다. 나아가 개인의 원칙과 신념이 때론 타인의 의도로 짓밟히고 뭉개질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폭력의 부당함을 심판하는 사법부가 오히려 합법적 폭력, 나아가 한 개인을 ‘사법 살인’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영화 중간 김경호가 “이건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라며 외치는 악은 힘을 앞세운 일부의 모순적 보수이자 힘없는 다수의 억울함을 동시에 대변한다.

연출을 맡은 정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100분이란 시간 안에 거의 완벽히 녹여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법정 소재를 빠른 장면 전환과 특유의 유머 코드로 버무려냈다. 실제 공판 기록을 토대로 구성한 재판 장면의 사실감 및 판사(문성근)와 김경호의 기싸움 장면은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쾌감에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김경호의 행동은 영화가 끝을 맺을 때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계란에 얻어맞은 바위가 ‘쩍’하고 두 동강이 나는 모습을 분명 떠올리게 될 것이다. 개봉은 내년 1월 19일.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큰 손 美 투자 엿보니 "국민연금 엔비디아 사고vs KIC 팔았다"[韓美 큰손 보고서]②
  • 개인정보위, 개인정보 유출 카카오에 과징금 151억 부과
  • 강형욱, 입장 발표 없었다…PC 다 뺀 보듬컴퍼니, 폐업 수순?
  • 지난해 가장 잘 팔린 아이스크림은?…매출액 1위 공개 [그래픽 스토리]
  • 항암제·치매약도 아닌데 시총 600兆…‘GLP-1’ 뭐길래
  • 금사과도, 무더위도, 항공기 비상착륙도…모두 '이상기후' 영향이라고? [이슈크래커]
  • "딱 기다려" 블리자드, 연내 '디아4·WoW 확장팩' 출시 앞두고 폭풍 업데이트 행보 [게임톡톡]
  • '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영장심사…'강행' 외친 공연 계획 무너지나
  • 오늘의 상승종목

  • 05.2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6,150,000
    • -0.02%
    • 이더리움
    • 5,288,000
    • +2.58%
    • 비트코인 캐시
    • 701,000
    • +0.5%
    • 리플
    • 731
    • -0.54%
    • 솔라나
    • 244,900
    • -0.97%
    • 에이다
    • 668
    • +0%
    • 이오스
    • 1,174
    • -0.42%
    • 트론
    • 164
    • -2.38%
    • 스텔라루멘
    • 153
    • +0%
    • 비트코인에스브이
    • 91,200
    • -2.51%
    • 체인링크
    • 23,050
    • -0.09%
    • 샌드박스
    • 633
    • -0.63%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