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픽션 혹은 다큐?…김기덕의 '아리랑'

입력 2011-12-0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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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아리랑’이 공개됐다. 공개의 의미 보단 ‘마지막’이란 단어가 더 크게 다가온다. 김기덕은 이번 상영을 끝으로 더 이상 ‘아리랑’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영화를 본 다면 왜 김기덕이 ‘아리랑’의 공개를 마지막이라 선언했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리랑’은 영화다. 또는 다큐다. 보는 시각에 따라선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그 무엇일 수도 있다. 그 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올해 초 칸 영화제 상영 당시 ‘궁극의 작가주의적 영화’란 찬사를 받았다. 칸은 그에게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수여하며 다시 한 번 김기덕에게 경의를 표했다.

영화, 혹은 그냥 ‘김기덕’이라고 불릴 이 영상은 김기덕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자 대답이며 또 스스로를 위안하는 자위 그 자체다. 90여분의 시간 동안 스크린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4명이다. 현실을 괴로워하는 김기덕, 그런 김기덕을 찾아온 김기덕, 그 두 사람을 스크린 밖에서 바라보는 김기덕, 그리고 어둠 속에 모습을 감 춘 채 그림자로서 살아가는 김기덕.

김기덕은 그렇게 네 명의 각기 또 다른 ‘나’를 통해 자신과 영화, 그리고 산 속 칩거 생활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반복한다.

화면 속 김기덕은 말 그대로 충격적이다. 산 속 어느 오두막 안 텐트. 봉두난발(蓬頭亂髮)의 초췌한 모습을 한 김기덕. 실제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던 그는 연거푸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괴로워한다. 말린 생선을 잘라 안주 대신 씹어댄다. 몇 달은 씻지도 않은 듯 갈라진 발뒤꿈치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따금 오두막 앞에서 큰일을 보는 장면도 화면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 준다. 지난 해 말 한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김기덕의 폐인설’이 딱 들어맞는다.

김기덕은 화면을 향해 ‘레디, 액션’을 외친다. 자신이 투영된 스크린 속 화면이 영화임을 관객들에게 알린다. 이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첫 마디는 이렇다. “3년째 영화를 못 찍고 있어다. 그래서 내가 나를 찍는다.”

김기덕은 2008년 영화 ‘비몽’ 촬영 당시 여배우의 사고 순간을 설명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한다. 자신의 칩거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하는 현실 속의 김기덕과 그런 현실의 김기덕을 질책하는 또 다른 김기덕. “너 이렇게 오두막에서 술만 처먹고, 그러니 폐인 됐다는 기사가 나오지. 그러니 좋냐? 김기덕!”

급기야 현실 속 김기덕은 “영화가 대체 무언지” “영화를 찍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라며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데뷔 당시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향한 충무로의 따가운 시선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조롱이다. 자신을 배척한 그들에게 뭐가 그리 대단하냐며.

한때 실명 거론으로 보도된 제자와의 갈등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기존 보도와 같은 자극적인 언급은 없다. 단지 “(제자는)스스로 유리하기 위해 떠난 것”이라며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일부 악역 전문 배우들에 대한 언급에선 독설을 넘어 강도 높은 육두문자(肉頭文字)로 비난했다. “X 같은 새끼들, X팔 X같은 새끼”란 욕설 자체가 그들을 향한단 느낌은 크지 않다. 결국 스스로를 오두막 조그만 텐트 속에 가둬버린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변명이었다. 이 대목에서 그가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그 반증은 아닐까.

영화 종반부로 치달으면선 그 감정의 진폭은 더욱 커진다. 홀로 오두막에서 권총 한 자루를 만들어 어딘가로 향한다. 울부짖음에 가까운 ‘아리랑’을 부르며 자신을 가둔 틀을 깨기 위한 몸부림 자체를 흐릿한 시선으로 처리했다. 총 세 곳에서 울려 퍼진 총소리와 함께. 결국 그는 마지막 자신을 향해 총구를 당기며 ‘아리랑’을 마무리 한다. 김기덕이란 인간 자체의 분노를 담은 총 한 자루로 현실 속 김기덕은 그렇게 사라졌다.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느낌은 일종의 판타지 형식을 따른 영화이자 다큐다. 오롯이 김기덕 혼자만이 아리랑을 책임진다. ‘드라마 혹은 판타지일 수도 있다’는 영화 속 김기덕의 고백이 ‘아리랑’의 의도성을 설명하는 단 한 줄이다.

영화란 관점에서 보자면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스타일이다. 자신이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자 변명일 뿐이다. 하지만 김기덕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 이유를 생각해보면 분명 독창성을 넘어선 그 무엇이 담긴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아리랑’은 실패한 어느 영화감독의 넋두리가 아닌 성공한 영화감독의 또 다른 실험이자 도전이다. 정규 영화 교육조차 받지 못한 그가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이유가 그 도전의 성과일 것이다. 그 도전이 가진 분명한 색깔에 주목하자면 김기덕의 ‘아리랑’은 분명 ‘관습적’인 개념에서의 영화를 뛰어넘는 그 무엇임에 틀림없다.

8일부터 21일까지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상영된다. 전 세계에서 ‘아리랑’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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