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결초보은한 경주馬, ‘백광’의 은퇴식

입력 2011-11-04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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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경주마 ‘백광’을 사랑하는 경마팬들이 ‘백광’의 은퇴식 준비에 나서 화제다.

치명적인 부상과 재기로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던 은빛가속도 ‘백광’이 정든 경주로를 떠난다. 고질적으로 발목을 잡았던 ‘인대염’때문이다.‘백광’은 경주마로선 환갑으로 불리는 8세의 나이에도 지난 10월 초 열린 KRA컵 클래식 대상경주에 출전해 마지막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경주 후 마체검사에서 ‘우중수부계인대염’으로 인해 경주부적격 판정을 받고 은퇴를 선언했다.

마사회 공식행사로서의 은퇴식 조건에 부합하지 못해 소리 소문 없이 경마장을 떠날 처지에 놓인 ‘백광’을 위해 그를 사랑했던 경마팬들이 발 벗고 나서 그들만의 은퇴식을 준비하게 된 것. 국내 최초 경주마 줄기세포 치료와 동물 명의로는 처음으로 ‘기부천사’로 명성을 날렸던 경주마 ‘백광’은 이제 경마팬이 주최하는 은퇴식 1호로도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백광’의 이수홍(80) 마주는 “제 몸 부서지는 줄 모르고 끝까지 뛰어준 ‘백광’에 고마움을 느낀다”며 “향후 씨수말로서 활동하며 제주도의 목장에서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줄 생각이다. ‘백광’을 빼닮은 후예들이 다시 경주로를 달리게 되기를 원하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 경주로에 데뷔해 통산 25전 11승, 승률 44%의 성적을 올린 ‘백광'은 세계적인 명마 '미스터프로스펙터'를 고조부이자로 둔 명문혈통의 경주마다. 혈통만큼이나 성적도 뛰어나 데뷔한지 불과 3전만에 대회에서 준우승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2006년에는 대상경주 3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며 이수홍 마주에게 우승의 영광을 안겨줬다. 특히, 제 이름처럼 빛의 속도로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선두로 치고 올라와 우승을 차지한다고 해 ‘은빛가속도’라는 별명이 붙었다. 열혈 팬들은 덤이었다.

하지만, ‘백광’에게 병마가 찾아 든 것은 2007년. 무릎 인대가 늘어나는 ‘좌중수부계인대염’. 이란 난치병에 걸려 더 이상 경주마로 뛸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경주마로서 인대염은 완치가 어려운 난치병이다.

경주마는 한 번 쓰러지면 다시 경주로에 서기 힘들다. 마방(馬房) 비용만 한 달 평균 80~100만원 가량이 드는데다 재기 가능성도 희박해 마주들 대부분이 안락사를 택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실낱 같은 희망에 기대 재활을 택한 것에 대해 “가족 같은 놈을 어찌 포기하느냐”고 말했다. 다른 경주마라면 경주마 은퇴라는 방법을 쓸 수도 있겠지만 이수홍 마주에게 백광의 존재는 남달랐다.

이수홍 씨는 자식처럼 아끼던 백광을 위해 백방으로 치료책을 찾던 중 국내에서는 아직 선례가 없는 줄기세포 치료에 희망을 걸게 된다. 반신반의했던 줄기세포 치료와 재활치료의 시간이 이수홍 마주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치료 이후에도 회복이 더디자 이씨는 지난해 11월 배대선 조교사와 상의한 끝에 백광을 제주도 해변가에 있는 목장에 풀어놓기로 했다. 그는 “병원치료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해줬는데도 쉽게 낫질 않아 마지막 수단으로 ‘자연으로 돌려보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자연치유 5개월 만에 백광이 건강을 되찾은 것. “기적이 따로 없지요. 마구간도 없고, 나무도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에서 비와 바람을 다 맞아가며 홀로 병마와 싸운 이 놈의 근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병마를 이겨낸 백광은 2007년 4월 이후 꼬박 30개월 만인 2009년 10월 2000m 장거리 경주에서 내로라하는 1군마들을 따돌리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국내 최고 경주마를 가리는 대통령배(G1) 대상경주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며 이수홍 마주의 극진한 사랑에 보답했다. 마주도 그해 백광이 받은 상금 8000만원 중 절반을 장애우들을 위해 써달라며 백광의 이름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1992년 개인마주제도가 도입됐을 때부터 평균 8~10마리의 말을 보유해온 이씨는 “내게 말은 오락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가족”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백광과 인연을 맺은 것은 백광의 누나 ‘소백수(少白水)’를 통해서다. “2002년 제주에 말을 사러 갔는데 소백수는 워낙 체구가 작아 다들 외면하더라고. 그런데 내 눈에는 그 놈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였어. 그게 인연이지 싶더군.” 뒤이어 한 살 터울인 백광과 여동생 ‘백파(白波)’까지 모두 그의 소중한 가족이 됐다.

백광의 팬들이이 모여 명마의 은퇴를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만드는 감동의 은퇴식을 4일 갖는다.

백광의 팬들은 그 동안 최고의 경주마로서 우리를 감동시켰던 ‘백광’에게 공로패를 이수홍 마주에 대한 감사패를 각각 수여할 예정이다. 또한, 국내 최초로 ‘백광’이라는 말의 이름으로 기부금 전달받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도 ‘백광’에게 감사장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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