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토론은 없고 주장만 있는 사회

입력 2011-10-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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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신 사회생활부장

“단답형으로 답하세요.” “저도 말 좀 합시다.” “제 주도권 시간입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시민후보 박원순씨과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TV토론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나경원 후보의 주도권 토론시간은 토론이란 말이 무색하리만큼 일방적인 폭로와 주장으로 일관됐다. 박원순 후보의 답변은 언제나 단답식이어야 했고, 이마저도 중간에 멈춰야 했다. 반면 박원순 후보는 주도권 토론시간은 절반 이상이 나 후보의 답변과 반박으로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두 후보자의 TV 토론 방식은 한국사회 토론문화의 극과 극을 보여줬다.

두 후보의 토론은 상호토론을 거쳐 결론에 도달하고 그 결론에서 해답을 모색하는 시민사회의 토론문화와 일방적 주장과 선언에 익숙한 정치권과 기득권의 토론방식의 충돌로 볼 수 있다.

선거결과를 놓고 MB정부의 실정이나 박근혜·안철수 효과와 같은 외부 요인이 선거결과를 좌우했다는 분석이 대세지만, 적어도 필자의 생각엔 이번 선거의 판세는 TV토론 과정에서 이미 결정이 된 것으로 보인다.

토론이 아닌 일방적인 주장과 훈계만 있었던 나경원 후보를 통해 유권자들은 MB정부나 오세훈 시장 시절의 무소통(無疏通)의 일방통행식 행정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했을 것이다.

토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discuss’는 ‘분산시키다’,‘정반대의 일을 하다’라는 의미의 ‘dis’와 ‘때려부수다’를 의미하는 ‘cuss’가 합쳐진 단어다. 말하자면 정반대의 것을 때리고 케내어 실체를 파악해 나가는 행위가 토론이다.

‘discuss’는 사회학이나 철학에서는 ‘담론’이라는 단어로 불린다. 담론(談論)은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한다는 뜻이다. 하버마스는 개인이나 집단이 허심탄회한 논의를 거쳐 이성의 해답을 구하는 과정(디스쿠르스·diskurs)을 담론이라 불렀는데 이는 이성적 사회가 가져야 할 이상적인 소통의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나경원 후보의 소통방식은 큰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나 후보의 소통방식은 MB정부의 소통방식이기도 하다. MB정부에는 토론 혹은 담론(discuss)보다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만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MB정부에서는 어떤 제도나 법을 만들거나 개정할 때 흔히 거치는 공청회나 설명회 같은 절차를 생략하기도 하는데, 대신 친정부 성향의 언론을 통한 여론 몰이에 더 신경을 쓴다. 이렇게 해서 일방적으로 완성된 제도나 법은 다시 친정부 성향의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프로파간다)한다.

재계와의 소통방식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대형유통업체간 벌인 수수료 인하 논쟁이나 복지부와 재약업계의 약가 인하를 둘러싼 논쟁도 사실 토론이나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재계는 최근 재계를 둘러싼 일련의 불리한 언론보도를 정부의 언론플레이로 받아들이고 있다. 언론플레이를 통해 재계의 도덕성에 흠집을 낸 후 불러다 압박하는 수순을 거치는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라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정부와의 회의는 회의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의 절차일 수밖에 없고 여론에 밀린 재계는 울며겨자 먹기로 잘못된 정책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친정부 성향의 언론에 발가벗겨질 각오를 해야 반기라도 들텐데 그 정도의 강심장을 갖고 있는 기업은 드물다.

기업들이 내년 사업계획을 짜면서 앞다퉈 투자축소나 연기를 계획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기업의 투자확대를 외치던 정부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표면적으로는 유럽발 재정위기와 미국경기 둔화 등 대외환경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사실 정부도 여기에 한 몫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살려달라는 기업에 오히려 이익을 줄이라는 둥 상생기금을 내놓으라는 둥 압박만 하고 있으니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 혹자들이 이번 정부를 ‘불통(不通)의 정부’라 폄하하는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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