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움추릴 때 더…선행 투자로 빛난 국내기업

입력 2011-06-07 10:38 수정 2011-06-0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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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불황이 이어지는 사이에서도 고급차 시장을 겨냥해 연구개발을 늦추지 않았다. 사진은 미국 고급차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던 제네시스 개발장면.
후발 기업은 불황기에 인력과 경비를 줄이고 호황기에 늘린다. 선두 기업이 되려면 호불황 사이클을 정확히 읽어 사전에 대비하고 불황기에는 투자를 늘리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물론 경기침체 분위기가 짙어지는 가운데 투자를 유지·확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10년, 20년 후 미래를 내다 본 과감한 투자는 그야말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불황기에 미래를 내다 본 선제적 투자를 통해 결실을 맺었다. 주요 선진국들이 불황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한국 기업의 잠재력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는 어려운 때일 수록 투자를 아끼지 않는 한국 기업 오너들의 과감한 선행투자와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해 어렵다고 하지만 투자와 고용을 지난해보다 더 많이 하겠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아무리 어려워도 R&D 투자는 줄일 수 없다”(구본무 LG그룹 회장), “현재로선 투자야말로 미래에 대한 보험이고 경쟁력을 키우는 것”(정준양 포스코 회장) 등의 메시지는 바로 투자가 있어야 미래가 있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삼성전자 LCD사업부의 한 직원이 노트북 패널의 외관 검사 작업을 하고 있다.
국내기업이 불황기에 투자로 성공한 대표적인 분야는 디스플레이 패널이다. 지난 1997년 3분기와 1998년 3분기 사이에 LCD 패널 가격이 약 60% 하락했다. 세계적으로 중복된 LCD 공급과 노트북 수요 부진이 주요 원인이었다. 일본 업체(샤프, DTI, 히타치 등)들은 당시 가동률을 40%대로 낮추고 투자를 축소하거나 연기했다.

같은 시기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업체들은 오히려 일본보다 투자시점을 앞당겨 4세대 라인에 먼저 진출 주도권을 확보했다. 이를 계기로 4세대 주도권이 국내로 넘어오고 삼성과 LG는 R&D에 집중 투자했다. 당시는 LCD 역사상 가장 긴 불경기였지만 국내업체들이 5세대 라인에서도 먼저 진출, 일본 업체의 투자시점을 빼앗았다. 대만업체는 기술력에서 밀리며 도태했다.

최근에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불황기 선행투자 성공사례로 꼽는다. 삼성그룹은 지난 2009년 1월에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설립, AMOLED 시장을 개척했다. 삼성그룹은 당시 신수종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중소형 LCD사업부와 삼성SDI의 AMOLED 사업 부분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합작사를 설립했다.

AMOLED 투자가 성급하다는 시각도 있었으나 타기업보다 먼저 투자를 집행하면서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를 봤다.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98% 육박했고 올해는 LG전자 등 타 기업들의 진출로 점유율은 줄겠지만 지배적인 시장 지위는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상황에 민감하고 시장경쟁이 치열한 자동차산업 역시 불황기 과감한 투자로 결실을 맺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전체 해외 생산공장 9곳 가운데 3곳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몰고 온 2008년 리먼쇼크 이후 준공했다. 2008년 세계 자동차시장은 극심한 불황에 빠져들었고 중소형차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같은 트렌드는 중소형차를 중심으로 제품을 구성해왔던 현대기아차의 전략과 맞아떨어졌고 회사는 불황속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속내는 달랐다. 극심한 불황속에서 전세계 완성차 메이커가 소형차로 눈을 돌리던 무렵 현대기아차의 연구개발 행보는 거꾸로 달렸다.

불황 속에서 현대기아차는 고급차 전략을 추진했다. ‘값싸고 품질좋은 한국차’라는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글로벌 고급차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불황 뒤 이어질 호황기를 대비해 불황속에서 미리미리 고급차 전략을 추진한 셈이다.

현대차는 2010년 하반기 에쿠스를 비롯해 제네시스 등 고급차를 미국시장에 출시했다. 이후 2~3가지 고급 모델을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이같은 전략은 리먼 쇼크의 여파가 거둬질 무렵인 향후 1~2년내에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호황 속에서 소형차 개발에 집중하고 지금같은 불황의 끝에서 호황기를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석유화학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에쓰오일은 최근 1조3000억원이 투입된 온산공장 확장 프로젝트를 완공했다. 이는 SK에너지와 GS칼텍스에 비해 작았던 석유화학 사업 이익 급증에 크게 기여할 것 판단된다. 중요한 사실은 이번 프로젝트가 호황기를 대비한 불황기 투자였다는 것이다.

조승연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에쓰오일의 제2 아로마틱 센터(온산공장 확장 프로젝트)는 90년대 말 고도화설비와 아로마틱 센터 투자 이후 10여년만의 대규모 투자로 불황기 선 투자 후 호황기 이익 회수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불황기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한 에쓰오일은 이익률 상승과 함께 3년 내외의 짧은 기간에 투자비의 전액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이 현재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배경도 과감한 선행 투자에 있다. 2차전지 사업이 계속 적자를 내자 일부 경영진들이 “세계적 전자회사들이 2차전지 기술개발에 한참 앞서 있는데 적자를 감수하며 사업을 계속해야 하냐”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구본무 회장은 과감한 투자를 이어갔다.

구 회장은 당시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길게 봐라. 그간 쌓아온 기술 노하우를 생각할 때 연구 · 개발(R&D)에 계속 투자하는 게 맞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반드시 기회는 찾아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불황기에 선제적 투자를 한 경쟁사에게 시장 우위를 한 번 빼앗기면 호황기에 그 격차를 좁히거나 우위를 탈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반면 불황기에 미래를 내다 본 과감한 투자는 기업의 지속성장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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