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탐방] 6개 금융사 연합밴드 'SOC'

입력 2010-12-03 11:19 수정 2010-12-0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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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사랑하는 증권맨들 6년째 '앵콜'

“6년 동안 앵콜을 외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왼쪽 위부터 손진(드럼)김기범(보컬)기타(한정훈)베이스(방희석)왼쪽 아래 정다이(키보드)임수진(보컬)오재원(보컬)
젊음의 거리 홍대 한 공연장에서 가슴 속이 후련해질 것만 같은 음악 소리에 흠뻑 취한 직장인 부대가 대거 모여 있어 눈길을 끈다. 음악이 끝나자 홍대 공연장 '프리버드'에 앉아있던 직장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떠들썩하게 박수를 치며 앵콜을 외친다.

“드러머가 일 년 사이에 많이 늘었네”객석 여기저기서 떠드는 사람들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공연을 찾았다고 했다.

앵콜곡 '붉은 노을'이 끝나자 밴드 멤버들은 객석으로 내려와 맥주병을 집어 들고 자연스레 섞인다. 누군가에게는 깍듯하게, 다른 누군가에겐 반가운 악수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영락없는 직장인이다. 이들은 SOC(사회자본 공공서비스)업무를 하며 알게 된 6개 금융 업계 사람들이 연합해 만든 ‘쏙(SOC) 밴드’다.

2005년 일인당 만 원씩 모아 연습비를 충당하자며 만든 '7만원의 약속'이 SOC밴드의 시작이었다. 학창시절 연대 락밴드 '소나기'에서 베이스기타를 쳤던 방희석 맥쿼리 캐피탈어드바이저스(Macquarie Capital Advisors)상무는 15년 만에 기타를 꺼내들었다. 방 상무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밴드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어도 기타를 항상 챙겨 다니며 몇 번 이사를 하고 얼마전 결혼을 했다. “우리 밴드나 만들어볼까?” 밴드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조혁종 교보생명 기업금융팀장의 한 마디가 술자리에서 연습실로 옮겨가는 데는 몇 달 걸리지 않았다.

SOC밴드에서 드럼을 맡고 있는 손진 우리은행 차장은 직장인 밴드에 목말라있었다. 우리은행에 처음 입사해서부터 은행 내 밴드동아리를 만들고자 고군부투했다. 대여섯 개의 직장인 밴드를 스치듯 지나와 지금의 SOC밴드에 정착한 손 차장은 이제 SOC밴드와 사람들이 중요해져 다른 부서의 스카웃 제의도 몇 번 고사하게 됐다.

손 차장이 우리은행에 입사했던 96년에는 이팔성 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의 짧은 인연도 있다. 당시 이팔성 회장은 영업본부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만돌라를 연주하는 등 음악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동아리를 만들려면 간부급 고문을 섭외해야 했던 손 차장은 이 회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 회장은 큰 관심을 보이며 추진하라고 했지만 업무가 많아 직접 참가하진 못하겠다며 다른 사람을 추천했다. “그때 이 회장님이 밴드 고문을 맡아주셨다면 지금쯤이면....” 손 차장은 아쉬운 인연을 회상하며 웃었다.

▲맨 오른쪽이 베이스기타를 치는 방희석 상무. 별명은 '바'라볼 수록 '보'고싶은 바보삼촌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보컬 김기범 차장. 방 상무가 SOC밴드를 계속 할 수 있게 된 은인(?)이다
건대 락밴드 옥슨에서 보컬이었던 김기범 KB자산운용 차장은 부모님의 반대로 2학년 때 동아리를 탈퇴했다. 그 시절 부모님이 보는 락밴드는 '딴따라'라는 고정관념이 컸다. 김 차장이 SOC밴드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이유도 학창시절 맘껏 즐겨보지 못한 음악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서라 말한다.

김 차장의 열정은 방 상무의 2006년 홍콩 파견근무도 백지화 시켰다. 회사에서 방 상무를 홍콩지점으로 파견근무를 결정 하자 김 차장은 당시 CEO 존 워커에게 이메일을 직접 보내 주변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방희석씨는 SOC밴드에서 베이스를 치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홍콩에 보낼 수 없습니다" 결국 방 상무는 한국에 남게 됐다. 깊은 인상을 받은 존 워커 대표는 밴드에 관심을 보였고 그 해 연말 송년회에 밴드를 초대하기까지 이르렀다. 존 워커 대표는 자신이 직접 기타를 메고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와 ‘아이 캔 시 클리어리 나우(I can see clearly now)’를 SOC밴드와 함께 연주했다.

▲밴드에 직접 찾아와 합류했다는 당찬 막내 보컬멤버 임수진 교보생명 사원

SOC 밴드의 막내 보컬리스트인 임수진 교보생명 사원은 “지난해 공연에 부모님을 초대했는데 공연을 다 보지 못하고 나가셔서 두 분이 소줏잔을 기울이셨다”는 사연을 공개했다. 임 사원은 고등학생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접었다. 공연장에서 기량을 발휘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미안한 마음에 공연장을 일찍 떠났다고 한다. 임 사원은 “이젠 부모님 뜻도 헤아릴 줄 알게 되고, 일도 밴드생활도 행복하니 내게 미안한 마음 안 가지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당부했다.

키보드를 치는 정다이 우리자산운용 사원과 보컬과 키보드를 함께 담당하는 오재원 과장은 남편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 “공연 실황을 비디오카메라 촬영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나중에 보니 노래의 클라이맥스이건 반주부분이건 죄다 키보드를 치는 정다이씨만 나오는거에요” 당시 카메라맨은 정다이씨의 남편. 멤버들의 푸념 섞인 부러움이 쏟아진다. 오 과장의 남편은 밴드 모임과 공연 연습 때마다 군소리 한 번 없이 아이를 챙기고, 시간 맞춰 데리러 오며 ‘천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SOC 밴드의 음악 철학은 'Feel'에 따라 '사람'에 따라...

SOC밴드원들은 직장에서도 종종 마주친다. 기업과 기관의 사회자본(SOC)프로젝트 미팅이나 실무 회의등 만날 기회가 많다. “사람을 알고 가까워지게 되니까 업무도 훨씬 잘 풀린다"고 손 차장은 말한다. 일방적인 자기 회사 입장이나 이익만 관철시키려고 하면 협상이 진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찾아보게 된다”며 “사적으로 친하면서도 비즈니스적인 예의가 잘 조화된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서로 믿고 오래 지낼 수 있었다”고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 2006년 대덕고등학교 BTL 프로젝트에는 밴드 멤버 전원이 협업해 일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이후 SOC일을 하는 업계 사람들 대부분이 SOC밴드를 알게 됐고 회사 행사나 기관 포럼, 송년회 등 여러 모임에 밴드를 초청하기도 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이면 회사사람들이 먼저 "이번 공연은 언제야?"라고 물어온다.

“20-30년 단위의 SOC프로젝트보다 더 오래가는 SOC밴드가 되고 싶다.” 동아리 회장이자 드러머인 손 차장은 “부동산 침체와 함께 사회자본사업도 침체기이지만 조만간 경제에 활력이, 업계사람들에겐 미소가 되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업의 키워드인 ‘신뢰’와 ‘신용’을 익힌 SOC멤버들은 "서로를 위해, 든든한 관객이자 직장동료를 위해 SOC밴드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타인과 사회를 위하는 일이 된다는 건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인 듯 했다. SOC밴드 사람들은 매일 출근해 사회 공공이익과 공공재를 위한 사회자본업무에 매진한다. 퇴근하고 나면 기획서나 제안서가 아닌 음악을 들고 SOC업계 사람들을 위해 합주를 한다.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데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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