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싸웠던 정부, 시장을 죽이는 정부

입력 2010-07-21 09:55 수정 2010-09-28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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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提言①]DTI 완화로 주택거래 활성화 취지 살려라

▲방형국 경제부 부국장
노자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을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최고 경지의 선(善)으로 보았다. 시대와 공간을 관통하는 대사상가(大思想家)가 이 같이 단순한 원리에서 선의 최고 경지를 본 것은 물은 밑으로 흐르며 순리에 역행하지 않고, 나무와 토지에 생명을 주고, 남의 더러운 것을 씻겨주기 때문이다. 산이 막으면 돌아가는 지혜가 있고, 바위를 만나면 바위와 다투지 않고 비켜가는 포용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전쯤 모 건설업체 사장과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사장이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정부여당이 왜 6.2 지방선거에서 크게 졌다고 생각합니까?” 순간 기자의 머릿속에는 ‘소통이 안돼서?’, ‘정부여당이 교만해서?’따위의 뻔한 생각이 떠올랐다. 대답하기가 민망해 기자가 머뭇하는 사이 그 사장이 내놓는 답변이 재미있다.

“돈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 돼도 참아요. 예를 들어 독재자가 아버지를 죽여도 부자들은 참습니다. 마누라를 뺏어가도 참아요. 부자는 아들, 딸을 독재자에게 빼앗겨도 참지만, 절대 참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재산을 건드릴 때입니다. 이번 선거, 집값 폭락으로 재산을 날린 사람들이 투표로 정부여당을 응징한 겁니다. 왜 내 재산을 건드리느냐는 거예요.”

단편적이긴 하지만 지금 죽을 둥 살 둥 하는 건설업체 CEO 처지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업계는 지금 전시상황이다. 살아남는 것만이 미덕이다. 포화에 다리를 잃던, 손을 잃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최고의 선(善)이다. 이들에게 지금 산을 만나면 돌아가라, 바위와 다투지 말라, 남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존재가 되라는 말은 죄다 허사(虛辭)다.

집을 공급하려 하면 팔리지 않고, 집을 다 지어놓으면 입주를 하지 않아 자금줄이 꽉 막혀있다. 직원봉급은 어떻게 줄 것이며, 다음 사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수많은 업체들이 부도를 맞거나, 강제로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패자요, 사망자들이다.

업계는 각종 규제를 앞세워 전쟁을 시작한 정부를 향해 그동안의 과오를 인정하며 수없이 종전(終戰)을 요청했다. 말이 종전요청이지 백기투항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전쟁의 와중에 애꿎은 민간인들도 엄청나게 피를 흘렸다는 점이다.

집 한채가 전재산이다시피한 서민들에게 집값의 급락은 치명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을 집으로만 보라 하지만, 이들에게 집은 단순히 집이 아니다. 자식교육 다 시키고, 직장에서 은퇴하면 제2의 인생을 준비할 든든한 기반이며, 노후까지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집이다.

제 2의 인생과 노후를 담보할 집의 가치가 반토막이 났으니 제 2의 인생 계획도 반토막, 노후도 반토막이다.

뿐만아니라 자녀교육을 위해 이사하려 해도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할 수 없고,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아 새로 분양받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이자부담만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있다.

마침 정부가 시장을 향해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얼어붙어 있는 주택시장을 풀어줄 대책을 마려하고 있다니 늦었지만 다행이다. 정부는 기왕 종전을 선언하는 만큼 차제에 선(善)을 행하라 권하고 싶다. 선을 쌓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積善之家必有餘慶).

정부는 시장에 역행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위기를 피하지 않고 껴안는 포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서 생명을 잃은 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게 다 적선(積善)이다. ‘만지작’ 수준의 대책으로는 곤란하다.

우선 시장을 옥죄고 있는 DTI(총부채상환비율)를 대폭 상향할 것을 제안한다.

수도권 지역에 따라 5~10%정도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만지작’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래서는 죽은 시장을 살리기가 불가능하다.

DTI완화 대상 지역에 강남을 포함시킬 것도 함께 고민하기 바란다. 강남 집값이 그동안 시장에 역행하고, 다투어 집값을 올려 ‘부동산 5적’이니, ‘버블세븐’로 지목되며 서민들을 좌절에 빠뜨렸지만, 이들도 포용해야 한다. 그래야 꽉 막혀있는 주택거래가 실타래 풀리듯, 도미노 쓰러지듯 살아날 수 있다.

정부는 부동산대책을 왜 내놓는가? 집값 올리려 내놓는 것인가? 아니다. 주택거래를 활성화시키려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강남만은 건드리고 싶지 않은 당국자의 마음 충분히 헤아린다. 깃털같이 가벼운 제도변경이 시장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하지만 강남을 건드려야 한다. 그래야 대책의 취지를 십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시장에 맞서 싸우다 집값만 잔뜩 올려놓는 우를 범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노 정권 때 도입된 대책(DTI 등)으로 시장을 죽이고 있다. 그때는 부동산시장이 과열됐지만, 지금은 침체돼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은 칼 들어 산허리를 베어내고, 바위를 토막 낼 때가 아니다. 다투지 않아 돌아가고, 껴안아 생명을 줄 때이다. 그게 정부의 존재이유고, 정부가 시장에 할 수 있는 선(善)이다.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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