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아우토반을 꿈꾸며"...GM대우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입력 2010-03-1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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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 수준 넘어선 핸들링…경쟁 모델 앞서는 주행 성능

사람들은 이 차를 '마크리'라고 불렀다. 뇌리 속에 오래토록 박혀있는 앙증맞은 '마티즈'에 굳이 '크리에이티브(Creative)'라는 어렵고 느끼한 이름을 더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크리'라는 별명은 싫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마크리!

지난해부터 마티즈 크리에이티브가 꽤 고무돼 있다. 여기저기서 안전한 차라는 평가가 쏟아진 덕이다. 유로NCAP 충돌테스트에서 측면부문 만점을 받았고, 유아 안전성평가도 만점이었다. 자신감이 차고 넘칠 만하다.

이런 자신감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장기시승 이벤트로 이어졌다. 고객에게 1년동안 차를 내줘 내구성을 평가받겠다는 뜻이다. 모두 777대의 라세티 프리미어와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를 시험대에 올렸고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누가 가슴에 불을 질렀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기자도 장기시승인 '777 이벤트'에 응모했다. 친절하게 GM대우 홈페이지에 접속해 원하는 것을 다 적어줬다. 그리고 간절하게 마티즈 한 대가 떨어지기를 갈망하며 두 손을 모았다.

물론 결과는 뻔했다. 수십만 명이 신청서를 낸 마당에 그런 행운이 쉽게 주어질리 없다. 이런건 애당초 축복받은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다. 그 즈음 GM대우에서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의 시승기회를 줬다. 1년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꼬박 2박 3일을 마크리와 함께하게 됐다. "안녕하세요? 마크리!"

◇얼굴이 길어 슬픈 마티즈

차를 바라보며 성별을 따져보는 재미는 언제나 쏠쏠하다. 쌍용 렉스턴은 중년의 아저씨를, 폭스바겐 뉴 비틀은 발랄한 아가씨를 연상케한다.

▲경차 기준을 꽉 채운 길이(3595mm)지만 결코 작아보이지 않는다. 크기를 마음껏 키운 헤드램프 덕에 존재감도 크다
그럼, 마티즈는? 앙증맞은 사이즈에 과격한 얼굴은 쉽게 규정할 수 없다. 영화 '쥬라기공원'에 나왔던 익룡의 얼굴이 이랬던가? 위아래로 길게 뻗은 헤드램프는 SF영화에서나(실제로도 그랬고) 볼 수 있는 캐릭터다.

한껏 치켜 올라간 벨트라인(윈도와 보디 옆면의 경계선)은 뒤쪽으로 갈수록 치켜올라간다. C필러(보디 옆면을 봤을 때 세 번째 기둥, 앞쪽부터 A, B C필러다)에 숨겨진 뒷 도어핸들도 재미가 가득하다. 앞으로 나올 GM대우의 소형차가 모두 이럴지 모른다.

4개의 바퀴는 4개의 모서리를 향해 돌진해 있다. 큼지막한 펜더가 휠하우스를 오롯이 감싼 모습이 경차답지 않다. 크롬장식과 편의장비가 넘치는 마티즈를 보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오늘날의 경차를 느낀다. 내 눈에는 최고급형보다 가장 기본형인 팝(Pop)이 더 멋져 보이는 이유는 뭘까.

◇경차답지 않은 경차, 그래서 재미는 반감한다

경차답지 않은 모습은 차 안에 가득하다. 우선 전동식 사이드미러가 어색하다. 작고 경제적이며 간편하고 부담없이 살수 있는 경차에게 과한 장비다. 꼭 필요했다면 조수석만 전동식을 고집하고 가까운 운전석은 수동식으로 꾸몄다면 더 멋져 보였을 것이다. 경차는 그래야 제 맛이다.

▲GM대우, 아니 GM차 분위기 물씬한 인스트루먼트 패널. 센터페시아의 버튼과 다이얼은 유저 인터페이스가 좋아 조작이 쉽다
짧은 팔을 뻗어 핸들 너머 왼편에 달린 사이드미러 조절레버를 움직여본다. 어차피 허리를 숙여야 하는건 마찬가지다. 이런 장비들을 덜어내고 차 가격을 낮춰 그 돈을 GM대우와 오너가 서로 나눠가졌다면 정말 좋았을 것을….

화려한 인테리어에서 유행을 쫓아가는 마티즈를 느낀다. 스티어링 휠은 손에 착 감기는 림은 정말 마음에 든다. 비싼 돈을 들여 가죽을 뒤덮거나 '가짜 우드 그레인'으로 치장하는 것보다 훨씬 잘 어울인다.

핸들에 오디오를 조작할 수 있는 리모컨 따위는 없다. 경차에 그런 장비는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다. 다만 센터페시아의 오디오 쪽으로 손을 뻗으면 자연스럽게 커다란 볼륨 다이얼이 손에 들어찬다. 굳이 핸들 오디오 리모컨이 필요 없는 이유다.

◇마티즈를, 아니 나를 흘겨보는 그녀

옆 차선에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온 하얀색 렉서스. 운전석에 앉은 아가씨는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쓸어 올리더니 화장 짙은 눈으로 파란색 마티즈를 흘겨보기 시작한다. 이제 눈에 익었을 법도한데 작고 날카로우며 귀여운 마티즈는 그녀에게 여전히 볼거리였을 것이다.

순간, 마티즈를 흘겨보는 그녀를 구경하다 눈이 마주쳤다. 이내 고개를 획 돌려버린 그녀는 운전석 윈도를 괴팍하게 끌어올린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신호가 바뀌자마자 두터운 배기음을 내 쪽으로 한웅큼 덜어낸 렉서스는 저 앞으로 무섭게 그리고 쏜살같이 질주해버렸다.

"아가씨, 어서 가서 리콜이나 받으세요…."

◇부족한 최고출력은 트랜스미션으로 보완해

작은 차의 핸들링은 경차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요리조리 가볍게 트위스트를 추다보면 재빨리 앞머리를 비트는 모습이 꽤 믿음직하다.

엄밀히 따져 핸들링이 좋다기보다 휠베이스(앞바퀴 중심에서 뒷바퀴 중심까지의 거리)가 짧아 뒷바퀴의 추종성이 뛰어나다는 표현이 맞다. 차 무게(910kg)가 가볍지만 노면을 꽉 붙잡는 힘이 생각보다 거센 것도 차 길이 대비 휠베이스가 길기 때문이다.

▲부족한 초기가속은 최종감속기어를 키워 보완했다. 초기가속이 경쾌하고 어느 기어단수에서나 쉽게 고회전까지 치닷고 최고출력 70마력을 알차게 써먹을 수 있다

직렬 4기통 1000cc DOHC 엔진은 최고출력 70마력을 낸다. 여기에 4단 자동기어를 맞물려 연비는 1리터당 17km를 찍는다. 연료탱크(35리터)가 작아 5만 원짜리 한장이면 마티즈를 잔뜩 배불릴 수 있지만 거꾸로 항속거리는 400km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시속 100km에서 엔진회전수는 3천rpm을 살짝 넘는다. 덕분에 출발이 경쾌하고 오르막도 가뿐하게 올라선다. 반면 최종감속기어비가 커 고속에선 엔진회전수가 너무 높고 소음이 커지며 연비도 기대치를 밑돌 것이다.

1990년대 초반 현대 엘란트라 1.6 DOHC 수동모델이 이랬다. 쌍용 무쏘 가솔린 2.3 DOHC도 딱 이런 기어비였다. 이들은 고속에서 낮은 회전수로 부드럽게 순항하기보다, 3천rpm 이상의 고회전을 써가며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태세를 갖춘 차들이다.

기어비 세팅을 이렇게 맞추는 이유는 정확하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연비와 상관없이 언제나 달리기만을 추구하는 발빠른 스프린터, 다른 하나는 엔진출력이 모자라 고속에서 '엥엥'거리며 고회전을 맞물려야하는 안타까운 차들이다. 마티즈는 어느 쪽일까?

◇원수는 서울외곽순환도로에 있었다

늦은 저녁, 외곽순환도로를 시속 90km로 순항한다. 은은한 가로등이 차창을 비추는 기분좋은 드라이브. 앙증맞게 작은 경차가 이토록 안정적이고 편하게 달리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DOHC 방식을 썼지만 배기량의 한계에 부딪혀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다만 중속부터 시작되는 추진력을 고속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경차 수준을 넘어선다

그렇게 마티즈를 한없이 느끼는 찰라, 순간적으로 싸늘한 공포감이 뒷머리를 찌른다. 운전을 하면서 이처럼 묘한 긴장감이 또 있었을까. 룸미러에는 저 멀리서 2개의 시퍼런 불빛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뒤따라온 서슬퍼런 헤드램프는 금방이라도 마티즈의 뒷 범퍼를 짓뭉겔 기세다. 다리가 슬며시 후들거리고 머리칼이 쭈뼛거리는 공포감이 조금씩 밀려온다. 시속 110km. 연신 헤드램프를 번쩍거리며 1차선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1차선을 내줬다.

범상치 않은 불빛은 마티즈를 스치듯 추월하며 1차선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찢어지는 엔진음을 흩날리는 그의 뒷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이 흐르며 나도 모르게 외마디를 질렀다.

"앗! 모닝이다"

◇4단 오버드라이브에서 최고속도 찍어

외마디 비명과 동시에 시프트 레버의 오버 드라이버를 급하게 누르고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쑤셔 박았다. 반템포 멈칫했던 트랜스미션은 곧바로 3단으로 갈아탔고, 곧바로 회전수를 6천rpm까지 튕겨낸다. 순간, 주변 풍광이 무너져 내리면서 마티즈는 곧장 고속영역으로 빨려들어간다.

이유는 없다. 그저 나를 몰아낸 차가 같은 경차라는 사실만이 이 추격전을 부추긴다. 텅빈 도로에서 누구 하나 봐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이건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나는 지금, 머플러의 뜨거운 열기를 향해 낮고 빠르게 공기를 가르는 한 발의 사이드와인더가 된다. 그리고 저만치 맹렬하게 도주하는 모닝의 꽁무니를 쫓기 시작했다.

서슬 퍼렇게 날이 선채로 1차선을 고집하던 도로위의 무법자(?)가 이 사실을 모를리 없다. 그 역시 1차선을 고수하며 빠르게 내빼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그의 뒷 범퍼를 향해 스티어링 휠을 겨냥하고 있다. 이미 가속페달은 바닥을 뚫어버릴 기세로 짓눌려있다. 순간적으로 치솟은 속도는 130km…, 회전수는 이미 한계치를 찍었다. 곧장 오버드라이브 'OFF'버튼을 다시 눌러 4단에 올라탄다. 그리고 곧바로 140km.

지금 이 순간, 텅빈 자동차 전용도로 위에 작고 앙증맞은 2대의 경차가 서로의 자존심을 앞세워 가진 파워를 몽땅 뿜어내고 있다. 그 뒤에는 결코 져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마저 서려있을 것이다. 난 지금 배기량과 최고출력만이 존재하는 고속도로에서 붙어볼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상대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투력 뒤에는 '너에게만은 당할 수 없어'라는 처절함만 가득하다.

모닝도 무서웠을 것이다. 날카로운 눈매의 마티즈가 그토록 무섭게 자신의 꽁무니를 물어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짧은 추격전은 긴장을 불러오고 속도계는 조금씩 범접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더 흘렀고, 마침내 앞서가던 모닝이 엔진회전수와 변속기의 기어비 그리고 타이어 사이즈로 결정되는 최고속도의 꼭짓점에 이르러 슬며시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한계속도까지 밀린 모닝은 그 순간에도 절대 1차선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나만의 아우토반을 꿈꾸며

시속 150km. 마티즈는 아직 조금씩 속도계를 더 머금어가며 한계점을 향하고 있다. 그 순간 무서운 마티즈의 기세에 눌린 모닝이 괴팍하게 2차선으로 자리를 내준다. 그리고 그가 기분 나쁘다는 듯 비켜버린 1차선에서 흡사 마른 수건을 짜내는 심정으로 모닝을 추월했다. 동시에 난 제원상 최고속도의 정점을 훌쩍 넘겨버렸다.

잠깐의 추격전(?)에서 모닝을 가볍게 제낀 마티즈는 세상을 다 얻은양 의기양양하다. 자동차 기자로 커오던(?) 시절을 더듬어 보았다. 수퍼카를 시승하면서도 이토록 짜릿했던가. 오히려 차를 타고 운전하면서 느끼는 재미와 감흥은 기아 K303이나 대우시절 맵시 때가 더 좋았다.

자동차가 주는 재미는 이처럼 배기량이나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한켠 어딘가에 늘 나 혼자만의 드림카를 담아두고 산다. 차를 좋아하는 이는 람보르기니 레벤톤을 흠모하지만, 차를 사랑하는 이에겐 작은 경차마저 위대한 존재다. 세상에 우리가 함부로 폄하하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 차는 한 대도 없다는 의미다.

한적한 도로 위를 찾아 가로등 아래 마티즈를 세웠다. 시승차는 옵션을 빵빵하게 채운 탓에 가격만 13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여러모로 재미가 가득한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를 보면서 단순한 기본형이라면 '한 대쯤 갖고 싶다'는 생각이 슬며시 밀려든다. 그리고 벌써부터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와 함께 아우토반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는 성능과 편의장비 등 많은 면에서 경차의 수준을 넘어섰다. 물론 가격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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