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여윳돈 1000조 육박…기업·가계 ‘온도차’

입력 2026-11-0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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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원 초과 고액 예금 역대 최대…반년 새 91조원 증가
5대 은행 기업 달러예금 1년 새 44%↑…수출대금 유입 확대
호황 수혜 IT·고소득층 집중…소비 회복 확산에는 시차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기업의 여윳돈이 불어나면서 은행 고액 예금이 역대 최대 규모로 늘었다. 하지만 실적 개선의 수혜가 일부 업종과 고소득층에 집중돼 내수 전반으로 소비 회복세가 확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국내 예금은행의 저축성예금(정기예금·정기적금·기업자유예금·저축예금) 가운데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계좌의 총예금은 960조1150억원으로 집계됐다. 2002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이는 지난해 말보다 91조6350억원(10.6%), 지난해 6월 말보다 138조7020억원(16.9%) 늘어난 규모다. 반기 기준 증가액도 역대 최대다.

계좌 수는 지난해 말 10만좌에서 10만2000좌로 증가했다. 전체 저축성예금에서 차지하는 잔액 비중은 50.6%로 4년 만에 절반을 넘어섰다. 한은은 고액 계좌 대부분을 법인 계좌로 추정하고 있다.

예금 종류별로는 10억원 초과 정기예금이 666조162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58조9870억원(9.7%) 증가했다. 법인과 개인사업자 등이 일시적인 여유자금을 맡기는 기업자유예금도 278조780억원으로 30조4690억원(12.3%) 늘었다.

반도체 등 주요 수출기업들의 상반기 기업 실적 개선이 고액 예금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는 상반기 각각 약 143조원, 98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수출대금 관련 거래도 늘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1~10월 타발송금(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송금) 취급액은 6217억9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30.1% 늘었다. 기업이 외화채권 등을 은행에 넘겨 대금을 회수하는 매입외환(네고) 취급액도 1407억2000만달러로 31.5% 증가했다.

5대 은행의 10월 말 기업 달러예금도 645억4600만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44.0%, 지난해 말보다 21.3% 늘었다. 전체 달러예금의 전년 동월 대비 증가액 가운데 기업 몫은 89.3%에 달했다.

기업의 자금 여력은 크게 개선됐지만 수출 호황이 가계 소비 회복으로 확산하는 속도는 더디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1.0% 증가한 반면 민간소비는 0.2% 감소해 2022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설비투자는 반도체 제조용 기계 등을 중심으로 4.1% 늘었다. 수출과 기업투자가 경제 성장을 견인했지만 소비는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이다.

반도체 기업들은 실적 개선으로 확보한 자금을 설비투자와 임직원 성과급 등에 활용하면서 국내 투자와 소득 증가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반도체와 관련 산업 및 대기업 종사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건설업과 내수 서비스업 등 수출 호황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기 어려운 업종은 소득 개선이 더뎌 기업의 막대한 여유자금이 가계 전반의 구매력 확대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 실적 개선이 가계소득과 소비 증가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호황의 수혜가 일부 업종과 계층에 집중돼 있어 내수 전반의 회복으로 확산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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