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제언] 여백이 채우는 취향의 세계

입력 2026-10-21 06: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오늘의 피드가 지겹다. 유튜브를 열어도 처음 보는 콘텐츠 같지만 이미 익숙한 흐름이고,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은데 검색창에 무엇을 입력해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누가 자기 알고리즘을 빌려주면 좋겠다. 이 미묘한 감정은 알고리즘 시대의 새로운 심리적 신호일 수 있다. 취향은 이미 알고리즘이 빚어주고 있고, 그것에 지친 뇌는 자기 취향이 아닌 남의 취향의 세계를 갈망한다.

이 갈망은 이미 시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문화 비평가 카일 채이카는 저서 『필터월드(Filterworld)』에서, 알고리즘 피드가 전 세계의 미학을 균질화하자 그 반작용으로 사람 큐레이터의 시장이 다시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에서도 사람이 이유를 대며 골라주는 유료 뉴스레터와 큐레이션 미디어의 성장이 눈에 띈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의 이유 있는 선택을 다시 구독하기 시작했다. 남의 취향을 사는 시대는 이미 열려 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면 이 관찰은 다르게 읽힌다. 문제는 ’내 취향이 왜곡됐다’가 아니라 ’취향을 스스로 만드는 능력이 위축됐다’에 더 가깝다. 알고리즘 피드는 매 순간 가장 만족을 줄 확률이 높은 것을 즉시 재생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는 이미 아는 것을 반복 소비하는 회로만 계속 강화되고, 알지 못하는 것을 탐색하는 회로는 켜질 자리를 잃는다. 뇌 안에는 이 두 회로가 원래 함께 작동하며 균형을 이루도록 진화해 왔는데, 그 균형이 지금 한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호기심의 심리학은 오래전에 이 지점을 짚었다. 호기심은 알고 있음과 알고 싶음 사이에 틈이 지각될 때 발화된다. 틈이 없으면 호기심은 켜지지 않는다. 신경과학의 확증도 그 뒤에 이어졌다. 사람이 궁금증을 느끼는 순간 도파민계와 기억 회로가 함께 활성화되며 학습이 강화된다는 연구가 반복 보고돼 왔다. 그런데 이 회로가 켜지려면 알 수 없는 것과 마주하는 여백이 필요하다. 다음 영상이 즉시 재생되는 환경에서 지겨움의 신호는 처리되지 못한 채 다시 익숙한 만족으로 덮이고, 호기심 회로는 자기가 켜질 자리를 잃은 채 위축된다.

그렇다면 남의 알고리즘을 빌리는 것이 답일까. 임시방편은 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계정을 잠시 사용해도, 그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상호작용에 따라 곧바로 재훈련된다. 즉 빌린 알고리즘은 며칠 만에 다시 자기 취향의 좁은 방으로 수렴된다. 문제의 뿌리가 알고리즘이 아니라 그 안에서 탐색하지 않는 습관에 있다면, 도구를 바꿔도 결과는 같다.

진짜 회복은 다른 자리에 있다. 검색창을 비운 채, 알고리즘이 알지 못하는 오지로 걸어 나가는 시간이다. 서점의 낯선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보는 15분, 지도를 열지 않고 낯선 골목을 걷는 오후, 추천이 아닌 우연에 자신을 맡겨 보는 짧은 여백이다. 호기심 근육은 자극의 총량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것과 마주할 자리의 크기에서 자란다. 지겨움은 지쳐 있음의 신호가 아니라, 뇌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 신호를 알고리즘이 다시 채워주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답해야 한다.

한유진 | CASA 융합심리연구소 소장 | 한국아동미술치료학회 교수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알립니다] '2027 테크 퀘스트'가 대한민국 AI의 미래를 엽니다
  • 강남 역삼동 2곳서 동시다발 화재 발생…심정지 1명·경상 10명
  • 줄 서는 맛집에 ‘패스트트랙’ 도입?…10명 중 6명 ‘찬성’ [데이터클립]
  • 코스피·코스닥 3%대 하락 마감⋯외인·기관 2.5조 ‘팔자’
  • 수주 호황에도 노사 갈등 격화…조선 노조 잇단 고공농성
  • 고액 보증금에 월세 비중↑…목동 학군지는 전세 우위
  • 단독 BS한양, 가덕도신공항 컨소시엄 탈퇴 의사⋯대우건설, 조달청에 전달
  • 하락 경고에도 “10억 이하 무주택자는 매수 검토”…고가 갈아타기는 관망
  • 오늘의 상승종목

  • 10.20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0,294,000
    • -0.1%
    • 이더리움
    • 3,264,000
    • +0.9%
    • 비트코인 캐시
    • 374,900
    • +0%
    • 리플
    • 1,772
    • +1.03%
    • 솔라나
    • 141,800
    • +0.57%
    • 에이다
    • 297
    • +1.37%
    • 트론
    • 440
    • -1.35%
    • 스텔라루멘
    • 242
    • +1.26%
    • 비트코인에스브이
    • 23,810
    • +1.36%
    • 체인링크
    • 16,340
    • +1.68%
    • 샌드박스
    • 78
    • -1.6%
* 24시간 변동률 기준

Web3 레이더

  • 주목 펀딩
    • 1 Ripple $500M
    • 2 Morpho $175M
    • 3 World OTC $52.5M
    • 4 Alpaca $135M
  • 인기 프로젝트
    • 1 NeoSoul Infra 인기지수 365
    • 2 Bedrock DeFi 인기지수 307
    • 3 LayerAI Infra 인기지수 302
    • 4 Metric 인기지수 292
  • 토큰 언락 임박
    • HumidiFi 유통량 113% D-49
    • Allora 유통량 89% D-21
    • Capricorn 유통량 53% D-2
    • Scroll 유통량 51% D-1
Source fr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