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코스닥에 드리운 '죽음의 소용돌이'

입력 2026-10-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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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상장사 A기업은 주가가 1000원 아래로 내려갈 위험에 처하자 5대 1 주식병합을 단행했다. 주가는 5000원 이상으로 올라섰지만 거래량은 급감했다. 병합 이전 하루 20만 주가량이던 거래량은 1만 주 안팎에 그쳤다. 주식 수 감소를 고려해도 거래가 4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시가총액 200억원 안팎이었던 B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주식병합을 통해 주가를 1000원 이상으로 끌어올렸지만 거래량은 병합 이전의 2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상장폐지 위험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 주식 거래를 위축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가 부실기업을 솎아내겠다며 강화한 코스닥 상장폐지 제도가 오히려 소형 상장사들을 '죽음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주가 하락에 따른 상장폐지 위험을 피하려고 주식병합을 단행하지만 유동성이 위축되고, 투자자 이탈은 다시 주가와 시가총액 하락을 부추기는 중이다.

애초 금융당국은 올해 7월부터 코스닥 상장폐지 시총 기준을 200억원으로 높이고, 주가 1000원 미만인 동전주도 상장폐지 요건에 포함했다.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해 시장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시총과 주가가 기업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적절한 잣대인지는 의문이다.

기업 가치가 똑같이 300억원이어도 발행주식이 5000만 주라면 주가는 600원, 500만 주라면 6000원이다. 기업의 전체 시장가치는 같은데 발행주식 수가 많다는 이유로 한쪽만 상장폐지 위험에 노출된다. 주식병합을 통해 가격을 높일 수는 있지만 기업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거래량 감소라는 부작용까지 감수한다.

시총 기준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실적이나 재무구조에 특별한 변화가 없더라도 주가가 하락하면 시총은 줄어든다. 특히 시총 기준선 근처에 있는 기업은 상장폐지 가능성만으로도 투자자들이 매수를 꺼릴 수 있다. 유동성이 부족한 소형주는 적은 매도 물량에도 주가가 크게 흔들리고, 시총 하락은 다시 상장폐지 위험을 키운다.

이른바 자기실현적 위기다. 상장폐지가 두려워 주식을 팔거나 매수를 피하는 행동이 실제 상장폐지 위험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유동성 감소까지 겹치면 기업은 자금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본업의 경쟁력이 악화하지 않았는데도 주식시장의 평가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제약하는 것이다.

부실기업 퇴출은 필요하다. 회계부정이나 만성적인 재무 부실로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는 기업까지 보호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기업 규모가 작거나 주가가 낮다는 사실만으로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부실기업을 퇴출하는 것과 작은 기업을 시장에서 밀어내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7일 시총 미달에 따른 후속 상장폐지 절차를 당분간 유예하기로 했다. 시총 기준에 걸린 기업들은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관리종목 지정은 유지되고 동전주 상장폐지 규정도 그대로다. 당장의 퇴출 절차를 멈췄을 뿐 소형주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은 남아 있는 셈이다.

코스닥은 본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시장이다. 지금 규모가 작더라도 기술력과 사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존재 이유다. 그런데 시총과 주가를 중심으로 퇴출 기준을 강화하면 성장 초기 기업일수록 투자자로부터 외면받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상장폐지 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기업을 퇴출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부실기업을 가려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시총 미달에 따른 상장폐지 유예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시장 가격을 기업 부실의 잣대로 삼는 시총과 동전주 퇴출 기준은 백지화하는 것이 맞다. 부실기업을 솎아내겠다며 만든 제도가 정상기업까지 죽음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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