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보험사 생산적 금융 확대에 정책펀드 우선 검토
일반 블라인드펀드 자금 모집 위축·GP 양극화 우려

정부가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대규모 정책자금을 공급하면서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의 자금 조달 환경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향후 5년간 간접투자에만 35조원이 투입될 예정인 가운데 금융회사들이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에 맞춰 정책펀드 출자를 우선 검토할 경우 일반 PEF 운용사들의 자금 모집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5년간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첨단전략산업과 관련 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간접투자 규모는 35조원으로, 정책자금을 마중물 삼아 민간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구조다. 국민성장펀드는 AI,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민간 운용사를 위탁운용사(GP)로 선정한다. GP는 정책기관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민간 기관투자자(LP)를 모집해 펀드를 결성하고 투자에 나선다.
문제는 국민성장펀드 출자사업이 확대되더라도 민간 LP들의 투자 여력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연기금과 공제회, 은행, 보험사 등 주요 LP는 연간 투자 예산과 자산군별 투자 한도를 설정해 자금을 운용한다. 정책펀드에 대한 출자 비중이 높아질 경우 기존 블라인드펀드에 배정할 재원이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금융회사들의 자금 배분 변화가 주요 변수로 꼽힌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면서 은행과 보험사들은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정책 목적이 명확한 데다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어 금융회사들의 주요 출자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국민성장펀드 출자를 일반 PEF 투자와 같은 잣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정책적 유인까지 고려하면 국민성장펀드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을 거두더라도 일반 펀드에 투자하는 것과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반면, 일반 PEF 운용사들은 투자 실적과 운용 역량을 바탕으로 LP를 직접 설득해야 한다. 기존에 거래 관계를 구축한 LP가 충분하지 않은 중견·중소형 운용사일수록 신규 자금 모집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 GP 선정 여부에 따른 격차도 주목된다. 정책 출자사업에 선정된 운용사는 앵커 출자자를 확보해 후속 펀딩을 추진할 수 있지만, 선정되지 못한 운용사는 독자적으로 자금을 모집해야 한다. 정책자금 확보 여부가 민간 LP의 출자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이같은 현상이 심화하면 정책자금 공급 확대가 전체 PEF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지기보다 일부 운용사에 자금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성장펀드 참여 운용사와 일반 운용사 간 펀딩 여건이 달라지면서 시장 내 양극화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정책펀드 출자가 반드시 기존 민간펀드 투자 축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금융회사들이 생산적 금융을 위해 별도 투자 예산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LP가 시장에 참여한다면 오히려 전체 투자 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 결국 국민성장펀드의 성과는 정책자금 공급 규모뿐 아니라 새로운 민간 투자재원을 얼마나 유인하는지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기존 LP 자금의 이동에 그친다면 정책자금의 마중물 효과가 제한될 수 있는 만큼 일반 PEF 시장의 펀딩 여건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이 생산적 금융 확대와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을 함께 고려하면서 국민성장펀드에 대한 출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한정된 출자 예산이 정책펀드에 우선 배정되면 일반 PEF 운용사들은 민간 자금 확보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