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개 지역 104곳 늘어나
2시간 줄 서는 맛집은 4000엔
日 젊은층 ‘타이파 소비’ 확산

일본 도쿄역의 한 유명 라멘집. 점심과 저녁 시간에는 라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30분에서 1시간씩 줄을 서야 한다. 반면 500엔(약 4700원)을 추가로 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입장할 수 있다.
이렇게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패스트패스’가 일본 음식점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기꺼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식당의 대기 시간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된 것이다.
10일 재팬타임스와 니폰닷컴 등에 따르면 일본 음식점용 유료 패스트패스 서비스 ‘SuiSui(스이스이)’를 도입한 음식점은 지난달 18일 기준 전국 20개 도도부현 104곳에 달한다. 주로 손님이 몰리는 도심 맛집, 유명 관광지의 라멘ㆍ소바 등 인기 음식점이 이용하고 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음식점 앞에 설치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뒤 패스트패스 이용권을 구매하면 일반 대기 손님보다 먼저 입장할 수 있다. 이용료는 음식점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500~2000엔이다. 특히 손님이 몰리면 가격이 올라가는 가격 변동제를 적용하기도 한다. 음식점의 줄이 길수록 ‘시간의 가격’도 비싸지는 셈이다.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도쿄역과 바로 연결된 지하상가의 라멘 체인 ‘부타야마’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2023년 12월 스이스이를 도입했다. 점심과 저녁에는 대기시간이 30분에서 1시간에 달하지만 500엔짜리 패스트패스를 구입하면 곧바로 입장할 수 있다. 평일 하루 평균 약 6차례 패스트패스가 이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관광지에서는 시간의 가격이 훨씬 비싸진다. 교토의 소바 전문점 ‘교토 가모소바 덴’은 주말이나 휴일에는 대기 시간이 2시간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실제 한 관광객 부부는 기다리는 대신 1인당 4000엔(약 3만8000원)을 지불하고 우선 입장을 선택했다. 두 사람이 밥을 빨리 먹기 위해 낸 돈만 8000엔, 우리 돈 약 7만6000원이다. 음식값보다 패스트패스 비용이 더 든 셈이다.

일본에서 이런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배경에는 젊은 세대의 이른바 ‘타이파(タイパ)’ 소비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타이파는 ‘타임 퍼포먼스(time performance)’의 일본식 줄임말이다. 같은 시간을 사용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효용을 얻느냐를 중시하는 개념이다.
식당 입장에서도 새로운 수익 모델이다. 기존에는 아무리 긴 줄이 늘어서도 음식 가격 이상으로 수익을 얻기 어려웠다. 패스트패스를 도입하면 음식값과 별도로 ‘대기 시간 단축’이라는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다. 인기와 혼잡도가 높아질수록 패스트패스 가격도 높아질 수 있어 맛집의 긴 대기줄 자체가 새로운 수익원이 되는 구조다.
일본 유통경제연구소의 스즈키 유타카 연구원은 “젊은 세대가 기다리는 시간을 없애기 위해 패스트패스를 이용하는 현상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강한 성향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음식점에서 시작된 패스트패스가 향후 미술관을 비롯해 줄을 서야 하는 다른 시설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논란의 여지도 있다. 돈을 더 내는 고객에게 먼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경제력에 따라 기다리는 시간까지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문제다. 무료로 줄을 서는 사람의 대기 시간이 유료 이용자 때문에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일본 외식업계에서는 패스트패스가 하나의 소비 문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사회가 ‘나의 1시간 가격은 얼마인가’라는 새로운 소비 문화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