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는 자국수리 등 사례별 달라
현지 맞춤모델로 세계 시장 공략을

지난달 초 에스토니아 타르투에 K9 자주포를 쓰는 일곱 나라 군인과 기업인 200여 명이 모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운용국이 해마다 돌아가며 여는 K9 유저클럽으로, 올해는 에스토니아군이 주최했다. 부품 견적부터 주문과 배송까지 한 화면에서 처리하는 디지털 지원체계도 선보였다. 보기 좋은 장면이다. 그런데 사진을 보며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모임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기를 사간 나라들을 한자리에 모을 줄은 알게 됐다. 그다음, 그 무기가 30년 멈추지 않게 하는 일을 어떤 계약으로 묶을 것인가.
최근 해외 방산기업들이 정비로 돈을 버는 방식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덴마크였다. 덴마크 육군은 2024년 2월 CV90 보병전투차 44대의 정비와 부품 공급을 제작사인 BAE 시스템스 헤글룬즈(BAE Systems Hagglunds)에 맡기는 기본협약을 맺었다. 기간은 15년, 발표된 규모는 약 4억달러다. 눈여겨볼 것은 차량 수가 아니라 기간이다. 44대를 산 나라가 15년 치 지원을 한 번에 요청한 것이다. 그해 덴마크는 신형 CV90을 115대 더 주문했다.
독일 라인메탈은 다른 길로 같은 곳에 이르렀다. 정비는 무기가 있는 곳에서 한다는 원칙 아래 레오파드 전차 운용국 곳곳에 정비 거점을 두고, 미국처럼 문을 잘 안 여는 시장은 아예 현지 부품업체를 인수해 안에서 들어갔다. 2024년 말 미시간의 차량 부품업체를 9억5000만달러에 인수한 것이 그 사례다. 오래 책임지고, 현지에서 책임진다. 두 회사의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덴마크식 계약서를 들고 가면 되는가. 폴란드가 그 답을 이미 줬다. K2 전차 1차 물량 180대는 지난해 11월 인도를 마쳤고, 올해 4월 현대로템과 폴란드 부마르는 현지 생산 준비와 K2 정비지원을 담은 협약을 맺었다. 현대로템이 수행하는 폴란드군 K2 정비에 부마르 인력이 참여해 기술을 익히고, 2차 계약으로 창정비 기술까지 넘겨받아 결국 스스로 고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현대로템이 장기 지원을 제안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구매국이 원한 것은 ‘우리에게 맡겨 달라’가 아니라 ‘우리가 하게 해 달라’였다. 캐나다가 잠수함 평가에서 자국 내 유지지원을 앞세운 것과 같은 흐름이다. 무기를 산 나라는 이제 정비를 자기 산업으로 가져가고 싶어 한다. 이 흐름을 거스르는 계약은 성사되지 않는다.
그래서 답은 하나의 계약서가 아니라 나라마다 다른 모델이다. 필자는 이를 여섯 가지로 나눠 제안하고 싶다. 폴란드처럼 현지 생산과 정비를 원하는 나라에는 그것을 받아들이되 가동률 같은 결과를 양쪽이 함께 책임지는 계약으로 묶는다. 미국처럼 자국산을 고집하는 나라에는 거꾸로 그들의 함정과 항공기를 우리 조선소와 정비창에서 고쳐 주는 동맹 정비로 들어간다. 아랍에미리트(UAE)처럼 환경이 극한인 나라에는 사막 특화 정비와 현지 합작을, 호주처럼 데이터에 민감한 나라에는 운용 데이터 공유를 조건으로 한 지원을 제안한다. 이탈리아처럼 자체 방산이 강한 나라에는 완제품 대신 부품과 기술 협력으로 돌아 들어가고, 이집트처럼 노후 장비가 많은 나라에는 진단부터 개량까지 묶어 제안한다. 같은 계약서를 여섯 나라에 내밀어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나라마다 답이 달라도 공통으로 디뎌야 할 뼈대가 하나 있다. 성과를 어떻게 재고 대가를 어떻게 주는지에 대한 한국의 표준이다. 지금 우리 수출 정비 계약은 표준이 없어 회사마다, 나라마다 매번 처음부터 만든다. 영국은 정비 요구사항을 국방부 문서 표준으로 두고, 기업은 그 표준을 그대로 들고 나가 세계에 판다. 우리도 가동률과 부품 납기, 책임 범위와 대금 지급을 담은 한국형 성과기반군수지원(K-PBL) 표준 계약서를 국방부 고시로 두어야 한다. 근거가 있어야 기업이 협상에서 버티고, 정부가 금융과 외교로 뒤를 받칠 수 있다. 내년 안에 초안을 만들어 폴란드 K2에 먼저 적용해 보고, 거기서 드러난 문제를 고쳐 K9과 천무로 넓히면 된다.
유저클럽은 좋은 출발이다. 운용국이 모여 경험을 나누면 신뢰가 쌓인다. 그 신뢰를 나라마다 다른 모양의, 그러나 같은 뼈대를 가진 긴 계약으로 바꾸는 것이 다음 할 일이다. 무기는 이미 팔았다. 이제 그 무기가 멈추지 않게 하는 일을, 그 나라가 원하는 방식으로 팔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