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핸즈’에서 자신을 위로한 음악과 그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곁을 오래 지켜온 홍재인을 연기한 배우 장규리에게도 20년 훨씬 넘게 이어가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연기다.
장규리는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에서 진행된 tvN 토일드라마 ‘포핸즈’ 종영 기념 라운드 인터뷰에서 “열심히 촬영했는데 많이 사랑해주시는 게 느껴져 감사한 마음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4일 종영한 ‘포핸즈’는 예술고등학교에서 만난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경쟁과 성장을 클래식 음악을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다. 장규리는 절대음감을 지닌 비올리스트 홍재인 역을 맡아 강비오 역의 송강, 최정요 역의 이준영과 호흡을 맞췄다.
장규리는 다른 사람의 재능을 바라보는 재인의 태도에 마음이 갔다. 그는 “세상은 천재를 좋아하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는데, 재인은 정요와 비오의 재능을 오해 없이 바라보고 그 재능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이어서 멋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인이 비오의 음악을 아끼는 마음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장규리는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부모의 이혼을 겪은 재인에게 당시 비오의 음악으로 위로받았던 순간이 깊이 남아 있다는 설정을 들었다.
그는 “재인에게 비오의 음악은 자신을 감싸주는 음악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며 “자신이 위로받은 경험을 다른 사람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인에게 비오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자신이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기도 했다.

음악이 주는 위로는 장규리에게도 익숙했다. 고등학교 음악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 등을 배웠다. 그는 “힘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연주할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어주셨다”고 돌아봤다.
음악에 대한 애정은 ‘포핸즈’를 선택한 이유이자 작품을 준비하는 동력이 됐다. 그는 “클래식 드라마를 꼭 해보고 싶었다”며 “음악을 통해 성장하는 청춘의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고 밝혔다.
비올라 연주 장면에도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장규리는 “처음에는 대역을 해주시겠다고 했는데 제가 하고 싶어서 레슨을 시켜달라고 졸랐다”며 “분량이 짧긴 하지만 직접 하는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약 두 달간 한 곡을 연습하며 악기를 잡는 법부터 익혔다. 시청자가 연주 장면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목표였다. 노력 끝에 어머니에게서 잘했다는 말을 듣고는 안도했다. 그는 “이상하거나 거슬리는 게 있으면 말해주셨을 텐데 잘했다고 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를 “최고의 칭찬”이라고 표현했다.
재인의 밝은 성격을 표현하는 데도 고민이 필요했다. 대본 리딩을 마친 뒤 감독은 목소리 톤을 더 높여달라고 요청했다. 장규리는 “극 안에서 밝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재인밖에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며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의 분위기 안에서 혼자 튀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부담도 있었다. 그는 “다른 분들은 현실적인 톤으로 이야기하는데 혼자 만화 캐릭터 같았다”고 털어놨다. 감독과 함께 과한 부분을 조절하며 재인의 밝은 에너지가 극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실제 장규리는 자신을 “간택받는 내향인”이라고 소개했다. 외향적인 친구들을 관찰하고, 지금보다 밝았던 자신의 10대 시절을 떠올리며 재인을 표현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재인과 달리 자신은 낯을 많이 가리고 “조용히 플러팅하는 편”이라고도 했다.

열일곱 살과 스물일곱 살의 차이는 말투와 옷차림으로 드러냈다. 10대 재인은 머리핀 등으로 귀여운 느낌을 살렸고, 매니저가 된 뒤에는 수트와 시계, 단정한 머리로 변화를 줬다. 목소리도 20대에는 현실적인 톤으로 낮춰 주변 인물들과 어우러지게 했다.
대본에 자세히 담기지 않은 10년의 시간은 스스로 상상하며 채웠다. 장규리는 재인이 매니저가 되기 위해 비올라를 그만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귀를 가진 만큼 자신의 연주에서 재능의 한계를 느꼈을 가능성과 비오와의 관계에서 겪었을 혼란을 함께 떠올렸다.
오랫동안 비오의 곁을 지켰다고 해서 그의 마음까지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규리는 비오가 재인에게 느끼는 감정을 묻자 “연기하면서 몰랐다. 그런데 모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재인도 비오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게 맞을 것 같았다”고 답했다.
비오와의 키스신도 재인이 오랫동안 품어온 감정 안에서 해석했다. 그는 “재인은 비오를 오래 좋아했던 인물”이라며 “여자와 남자 사이 사랑의 키스보다는 심폐소생 같은 느낌으로 비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최종회에서 재인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대표로 자신의 일을 이어간다. 장규리는 “재인에게 비오가 삶의 전부인 것처럼 나올 때가 있는데, 그렇지 않고 매니지먼트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도 나온다”며 인물을 향한 애정을 전했다.
촬영 현장에서는 송강과 이준영에게 힘을 얻었다. 세 배우 모두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맏형인 송강이 먼저 편하게 다가와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했다. 장규리는 막내로서 장난을 주고받고 사진도 많이 찍어줬다며 함께한 시간을 돌아봤다.
한 인물의 10년을 연기한 경험은 장규리에게도 성장의 계기가 됐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여러 감정과 나이대를 표현한 과정 자체가 성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인물의 특정 시기나 한 면을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다양한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다.
자신의 연기를 돌아보는 시선은 여전히 엄격했다. 장규리는 감정선이 끊겨 보이거나 연기가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며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싶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데뷔했을 때부터 작은 역할을 맡을 때도 ‘난 준비됐다’고 생각해서 맡은 적은 없었다”며 “늘 의심도 되고 걱정도 되는데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장규리는 올해 개봉 예정인 차기작 영화 ‘완벽한 집’을 통해 처음으로 오컬트 장르에 도전한다. 새로운 장르로 경험을 넓혀가는 그에게 ‘배우’, ‘연기자’라는 호칭은 더 이상 예전처럼 어색한 이름만은 아니다. 그는 “수식어가 중요한가라는 생각은 한다. 보고 싶은 대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어떤 호칭으로 불리든 장규리의 바람은 연기를 오래 이어가는 것이다. 그는 “재인처럼 무언가를 20년 동안 좋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저도 20년 훨씬 넘게 연기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