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순환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정치권은 북한을 정쟁에 끌어들인다. 대화를 말하면 ‘퍼주기’, 압박을 말하면 ‘대결주의’라는 딱지를 붙인다. 정작 국민에게 북한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단 이후 남북관계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통일에는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니 국민은 북한을 정책이 아니라 진영의 언어로 먼저 배운다. 미사일을 쏘면 여론이 끓고 정상회담을 하면 기대가 치솟는다.
정치권은 다시 그 여론에 올라탄다. 정부는 장기전략보다 당장의 정치적 부담을 의식한다. 관계가 좋아지면 사업과 조직을 늘리고 나빠지면 예산과 인력, 연구를 줄인다. 현장 인력들과 전문가들은 정권의 정책기조에서 자유롭기 어려워지고 연구와 정책 역시 단절된다. 정권이 교체되면 전임 정부의 정책은 다시 뒤집힌다. 국민은 ‘또 저 싸움이냐’며 지치고, 청년은 남북관계라는 주제 자체에서 멀어진다. 사회적 관심이 떨어지니 정치권은 더 짧고 자극적인 말로 북한을 끌어다 쓴다.
정리하면 그 공식은 이렇다. 정쟁이 무지를 만들고, 무지가 감정적 여론을 만들고, 감정적 여론이 단기정책을 만들고, 단기정책이 정권교체 때마다 뒤집히고, 반복되는 실패가 다시 무관심과 혐오를 만든다. 그리고 그 무관심을 먹고 정쟁이 다시 시작된다. 이게 대한민국 대북정책이 갇혀 있는 악순환의 회전문이다.
북한을 이해하자는 것은 북한을 좋아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체제와 사회, 남북관계의 역사조차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찬성이냐 반대냐부터 고르는 것은 판단이 아니다. 반응이다.
전문가 몇 명을 더 앉힌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북한을 분석하는 사람만큼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연구를 국민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 정치와 연구를 연결하는 사람, 정책과 실제 한반도에서 살아갈 국민의 생각을 연결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대북정책을 일부 전문가의 영역에서 국가 전체의 장기전략으로 바꾸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 내부 기반은 허술한데 북미대화가 거론될 때마다 ‘한국 패싱’을 걱정한다. 순서가 거꾸로다. 회담장에 의자 하나 얻는다고 국가전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 대한민국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내부의 축적부터 있어야 한다.
통일교육부터 바꿔야 한다. 통일이 좋다는 결론을 외우게 할 필요도, 북한을 특정한 시선으로 보게 할 필요도 없다. 북한의 현실과 한반도의 역사, 안보와 평화, 공존과 통일의 여러 선택지를 사실에 근거해 배우고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투표용지만 주는 제도가 아니다. 복잡한 문제를 알고 토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까지 민주주의다.
북한과 미국의 선택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대한민국 내부의 구조는 우리가 바꿀 수 있다. 의미 없는 지지율용 정쟁을 줄이고, 국민이 판단할 기반을 만들고, 전문가와 국민을 연결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남는 최소한의 전략을 축적해야 한다.
대북정책의 실패를 언제까지 북한 탓, 미국 탓,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릴 것인가. 밖을 움직이기 전에 안부터 고쳐야 한다. 이 회전문을 부수지 못하면 북미대화가 다시 열리고 남북대화가 다시 시작돼도 대한민국은 또 처음부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