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도심 한복판에서 탐스러운 사과를 수확하려면 값비싼 묘목을 사 오는 것보다 먼저 메마르고 거친 땅을 깊이 갈아엎어 영양분이 가득한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 기초 공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8월 20일 국무회의를 최종 통과한 ‘주얼리산업의 기반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주얼리산업진흥법)’은 종로와 전국 주얼리 골목에 단비와 같은 제도적 거름이다.
법 제5조는 산업통상부 장관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해 5년마다 ‘주얼리산업 기반조성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명시했다. 7조원대 내수 시장을 제도권으로 끌어올리고 글로벌 명품 기간 산업으로 도약시킬 법적 청사진이 비로소 펼쳐졌다.
5개년 계획의 핵심 승부처는 단연 ‘AI 대전환(AX)’이다. AX란 단순히 컴퓨터나 인터넷 프로그램을 쓰는 단계를 지나, AI가 일상의 업무와 의사결정을 주도적으로 돕는 구조로 산업 전체를 탈바꿈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값비싼 AI 솔루션이라는 사과나무를 심기에 앞서, 우리는 과연 AI가 뿌리내릴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 토양’을 갖추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현재 전국 1만5000여 귀금속 매장과 공방의 현주소는 척박하기 그지없다. 점포마다 포스(POS) 기기, 엑셀, 수기 장부를 제각각 쓰고 있다. 금 순도, 중량, 보석 등급, 공임 등을 부르는 용어조차 상인마다 제각각이다. 원천 데이터의 규격과 품질이 일치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AI를 도입해도 무용지물이다. 점포 간 시스템이 서로 연결되지 않아 산업 전반으로 기술이 확산하지 못한다. 결국, 공통된 언어로 정리된 ‘표준 데이터’라는 토양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진흥법이 그리는 장밋빛 AX 청사진도 사상누각이다.
산업통상부가 수립할 5개년 기본계획에는 다음 세 가지 방향이 명확히 담겨야 한다. 먼저 ‘공통 데이터 표준 인프라’ 예산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 기업별로 파편화된 일회성 소프트웨어 보급보다는 산업계 전체가 함께 쓰는 공통 데이터 사전, 표준 연계망(API), 안전한 데이터 공유망 구축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또 데이터 표준 규격과 중앙 AI 판별 연계망 등 기초 토양을 공공재로 탄탄히 닦고, 그 위에서 다양한 민간 AI·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편리한 서비스를 개발해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국 소매상이 과도한 비용 부담이나 기술적 어려움 없이 동참할 수 있도록, 권역별 현장 실증을 거쳐 검증된 표준 패키지도 단계적으로 보급해야 한다.
5개년 기본계획의 첫 장을 ‘양질의 데이터 표준화’로 굳건히 채워야 종로의 오랜 손기술과 첨단 AI가 결합한 K주얼리는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가장 풍성한 명품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