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자본 뒷받침없으면 고립될 뿐
주력산업 결합한 정책 지원 절실해

지난해 12월 이 지면에서 필자는 지역 문화산업정책이 전국에 비슷한 인프라를 깔아 온 균형발전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특화된 클러스터와 가치사슬을 구축하자는 차별화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특화 분야를 정해 차별화하면 지역 문화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최근 통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2022년 콘텐츠산업 매출액 가운데 서울은 63.4%, 경기는 23.6%로 두 지역이 87.0%를 차지했다. 2024년에는 서울 66.1%, 경기 18.5%로 합계 84.6%였다. 두 지역의 비중은 2.4%포인트 줄었지만, 서울은 2.7%포인트 오르고 경기는 5.1%포인트 내렸다. 수도권의 압도적 집중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울 단극화가 더 뚜렷해졌다.
지역 간 성장 격차도 크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콘텐츠산업 매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제주 59.3%, 세종 20.9%, 부산 19.2%, 전북 12.7%, 충북 9.1%였다. 반면 인천, 대전, 울산, 강원, 충남은 감소했다. 규모가 작은 지역의 기저효과를 감안해도 성장 경로가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문화산업은 창의적 인재, 제작 인프라, 투자 자본, 유통 플랫폼이 모일수록 경쟁력이 높아지는 집적경제 성격이 강하다. 서울이 이 모든 요소를 갖춘 상황에서 같은 구조를 축소 복제해서는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 특화 분야를 정하는 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자본과 시장에 연결되지 않으면 차별화는 고립된 인프라로 남을 수 있다.
따라서 정책의 질문은 ‘무엇을 특화할 것인가’에서 ‘특화한 산업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것인가’로 옮겨가야 한다. 첫째, 지역을 산업 기반과 성장 단계에 따라 선도지역, 성장지역, 기반구축지역으로 구분해 정책수단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선도지역에는 글로벌 진출과 투자유치를, 성장지역에는 기업의 스케일업과 전문인력 확보를, 기반이 취약한 지역에는 대학·창작자·기업을 잇는 생태계 구축을 우선 지원하는 방식이다.
둘째, 지역 문화산업을 ‘지역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산업’이 아니라 ‘전국 및 세계와 연결된 산업’으로 설계해야 한다. 모든 지역에 완결된 가치사슬을 갖추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지역에서 만든 지식재산(IP)이 서울의 투자자와 만나고, 다른 지역의 제작기술을 활용하며,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세계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가치사슬 전체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지역 기업과 창작자가 얼마나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느냐이다.
셋째, 지역의 주력산업과 결합해야 한다. 제주는 관광과 자연자원, 부산은 영화·영상과 해양관광, 전북은 전통문화, 대전은 과학기술과 AI처럼 저마다의 자산이 있다. 지역 문화산업을 따로 떼어 육성하기보다 이 자산과 결합해 새로운 부가가치와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성과를 재는 잣대도 바뀌어야 한다. 산업지원센터 수나 프로그램 참여자 수가 아니라 성장기업과 경쟁력 있는 IP가 얼마나 생겼으며 매출, 고용, 투자,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시설과 사업의 숫자가 아니라 기업과 산업의 성장이 정책의 성과가 되어야 한다.
지역 문화산업정책의 목표가 서울 생태계의 축소 복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마다 다른 산업 기반과 성장 단계를 인정하고, 기업과 창작자가 전국 및 글로벌 가치사슬에 연결되어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지난 정책이 ‘어디에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물었다면 이제는 ‘누가 성장하고 어떻게 시장과 연결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나무는 옮겨 심는다고 잘 자라지 않는다. 뿌리가 닿을 토양과 물길이 있어야 자란다. 지역 문화산업정책도 이제 차별화를 넘어 성장의 정책으로 진화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