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김대종의 경제진단] 큰 정부보다 ‘예산 효율성’이 관건

입력 2026-09-03 06: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반도체 호황 등에 업은 슈퍼예산안
성장과 산업 경쟁력 강화 집중하고
재정여력 키워 후세대 부담 줄여야

정부가 2027년 예산을 821조원 규모로 편성했다. 전년보다 약 12% 늘어난 사상 최대 수준의 예산이다.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성장으로 세수 여건이 개선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정 역할이 커진다는 점에서 예산 확대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예산 규모가 커질수록 반드시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 재정건전성이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원화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부채와 재정적자가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국가부채가 계속 증가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 수준에 접근하게 된다면 국가신용도와 재정 여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국제기구들이 한국에 재정건전성 확보를 지속적으로 권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정부의 재정정책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서로 엇박자를 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경기 부양에 나서는 동시에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면 정책 효과가 서로 상쇄될 수 있다. 정부는 돈을 풀고 중앙은행은 돈을 거둬들이는 상황이 반복되면 경제주체의 혼란이 커지고 정책 효율성도 떨어진다. 따라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와 성장, 고용, 금융시장 상황을 긴밀히 공유하면서 거시경제 정책의 조화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행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물가가 목표 수준에서 안정되지 않으면 국민의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다. 정부가 재정을 지나치게 확대해 시중 수요를 자극하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재정 확대 자체가 물가 상승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급 여건과 경기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대규모 지출은 물가 안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첫째, 정부 재정은 지속 가능한 범위에서 확대해야 한다. 물가와 경제성장률, 세수 증가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정한 예산 증가율을 설정해야 한다. 반도체 수출 증가와 세수 개선을 이유로 일단 예산을 크게 늘리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한번 확대된 정부 지출은 정치적·사회적 이유로 다시 줄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세수가 좋아졌다고 해서 모든 추가 세수를 새로운 지출로 연결하기보다는 일부는 국가부채 상환과 재정 여력 확충에 활용해야 한다.

둘째, 예산의 양보다 질을 높여야 한다. 821조원이라는 거대한 예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모든 사업에 동일하게 돈을 배분할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산업 경쟁력 강화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예산 편성과 집행의 원칙은 공정성·성과·효율성이 되어야 한다. 성과가 낮거나 중복되는 사업은 과감하게 구조조정하고 국민에게 필요한 분야에는 충분한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셋째, 미래 위험에 대비한 재정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와 원자재를 상당 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경쟁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유가와 환율, 공급망에 충격이 발생하면 우리 경제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모든 재원을 현재의 지출에 사용한다면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응할 여력이 부족해진다.

반도체 산업이 앞으로도 한국 경제의 핵심 성장동력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반도체 수요가 영원히 같은 속도로 증가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뿐 아니라 미국 빅테크 기업들도 인공지능과 반도체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와 기술 변화에 따라 수요가 급변할 가능성도 있다. 반도체 호황기에 확보한 세수를 모두 영구적인 지출 확대에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넷째, 정부 정책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기업과 국민은 정부의 정책 방향을 보고 투자와 소비를 결정한다. 세제와 재정, 산업정책이 매년 크게 바뀌면 기업의 장기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 정부는 최소한 중장기적인 재정운용 원칙을 제시하고 이를 꾸준히 지켜야 한다.

재정은 국민이 미래에 갚아야 할 돈이기도 하다. 현재 세대가 필요 이상으로 빚을 늘리면 그 부담은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된다.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재정지출은 과감하게 하되, 효과가 불분명한 지출은 줄이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2027년 821조원 예산의 핵심은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쓰느냐’에 있다. 정부는 재정 확대와 재정건전성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함께 달성해야 할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한국은행 역시 물가안정을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하되 정부와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경제정책의 최종 목표는 단순한 예산 확대가 아니다.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며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2027년 예산은 공정성·성과·효율성을 바탕으로 집행하고, 호황기에 재정 여력을 축적해 위기에 대비하는 책임 있는 재정정책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큰정부’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일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부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어느 장단에 맞추나”⋯종부세 뒤집기에 강남 집주인 ‘부글부글’
  • '대기업 가고 연봉 4470만원 받고'…구직자들의 취업 희망 [데이터클립]
  • 2027 예산안, '꼭 챙겨야 할' 청년·신혼부부 체크리스트 [이슈크래커]
  • "쌩큐, K컬처"⋯방한 외국인들, 2분기 韓서 카드 '역대 최고액' 썼다
  • 현빈ㆍ정우성→손예진ㆍ지창욱까지⋯'톱스타' 이름값, 이번에도 통할까 [엔터로그]
  • 금리 뛰는데 부실채권 이미 19조…가계·기업·은행 ‘건전성 경고음’ [고금리 청구서]
  • 수능 전 마지막 9월 모평⋯국어·수학 어려워지고 영어 쉬워졌다 [종합]
  • 2개월 만에 물가 3% 복귀…"SKT통신비 할인 기저효과"
  • 오늘의 상승종목

  • 09.02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06,330,000
    • -0.48%
    • 이더리움
    • 3,292,000
    • -1.35%
    • 비트코인 캐시
    • 335,900
    • -1.12%
    • 리플
    • 1,853
    • -0.54%
    • 솔라나
    • 137,100
    • -0.51%
    • 에이다
    • 273
    • +0.74%
    • 트론
    • 447
    • -0.22%
    • 스텔라루멘
    • 239
    • -1.65%
    • 비트코인에스브이
    • 21,640
    • +0.7%
    • 체인링크
    • 15,260
    • -1.23%
    • 샌드박스
    • 49.12
    • -0.6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