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을 넘어 존중으로, 건식저장시설의 사회적 해법 [정책발언대]

입력 2026-08-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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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김진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우리가 누려온 전기의 편익 뒤에는 반세기 가깝게 쌓여 온 묵직한 숙제가 있다. 원전으로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남겨진 불가피한 부산물, 사용후핵연료다. 그동안은 수조에서 열과 방사능을 식혀 왔지만, 이제 그 공간이 한계에 다다라 사용후핵연료를 지상으로 옮겨 보관하는 건식저장시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경주 월성 원전에서는 이미 운영 중이며, 다른 원전들도 수조 포화가 임박했다. 건식저장은 영구처분장이 마련될 때까지의 임시저장 단계로 계획되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이 현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함께 풀어갈 것인가이다.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은 원전 주변 지역사회에 안전뿐 아니라 지역의 미래와 지역민들의 사회적 위치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안긴다. 국내외 운영 사례, 실증자료 등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설명은 안전을 둘러싼 불확실성 해소에 도움이 되지만 지역의 미래와 지역민들의 위치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다독이기에는 불충분하다. 결국 핵심은 관계의 문제다. 지역사회가 감당하는 부담을 어떻게 인정하고,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논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질적 보상이다. 그러나 관계의 문제를 오직 금전적 보상으로 대신하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여러 쟁점이 "얼마로 합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좁혀지는 순간, 지역사회와의 관계는 납작한 거래로 축소된다. 표면상으로 합의를 이룬 듯 보여도, 그것이 곧 지역과의 상생이나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어질지 불확실하다. 지역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더 많은 보상금만이 아니다. 정책의 정당한 당사자로 인정받고 존중받는 일이다.

이러한 인정과 존중은 입지 지역 내부에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의 국민 대상 원전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안전성과 효율성, 저탄소 에너지로서의 장점을 알리는 데 집중해 왔다. 그러나 원전이 생산한 전기의 편익을 온 국토와 사회가 누려왔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역시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이야기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가 무엇인지, 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 문제가 되는지조차 모르는 국민도 적지 않다. 이 문제가 사회 전체의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은 채 해당 지역사회의 사안으로만 좁혀지면, 입지 지역민들의 복잡한 경험은 사회의 시야에서 가려진다. 논의가 보상 규모에만 머물수록,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과 지역사회에 대한 편견, 나아가 낙인이 더해질수록 이들의 소외감은 깊어진다. 그러한 시간이 누적될수록 지역민들은 결국 자신들이 이 사회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정부·사업자·언론 등 주요 원전 거버넌스 주체들과 범지역적 국민들이 입지 지역민들의 역할을 기억하고, 이들의 국가적 기여에 걸맞은 인정과 존중을 보낼 때, 비로소 지역민들은 자신들의 경험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이때 단절은 관계로 바뀌고, 고립은 사회적 연결로 이어진다. 반대로 지역의 소외가 지속된다면, 새로운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논의는 다시 보상금 중심의 일회성 거래로 귀결되기 쉽다. 관계를 쌓기보다 거래를 반복하는 구조가 굳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획득한 동의, 이른바 ‘주민 수용성’은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 합의가 아니기에 언제든 위태롭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전기를 함께 사용해 온 우리 모두가 사용후핵연료, 나아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문제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다.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입지 지역사회를 우리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정당한 당사자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새롭게 세워야 할 관계다. 물질적 보상만으로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관계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을 또다시 특정 지역만의 부담으로 남겨 두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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