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시대 인간이 ‘학습’해야 할 이유

입력 2026-08-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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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연세대의 한 비대면 중간고사. 학생들은 시험 내내 자신의 화면과 손을 촬영해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도 수강생 353명 중 190명이 AI로 커닝했다고 답했다. 같은 학교의 다른 강의는 반대로 AI 사용을 공식 허용했다. 그러자 수강생의 84%가 A학점을 받았다. 금지해도 무너지고 허용해도 무너졌다. 답안지가 더는 실력을 증명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AI가 인간의 일을 모두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필자는 그런 전망이 기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인간은 주체적 존재이고, AI와의 관계에서도 주체성을 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표 세우고 참여하기 … AI는 못해

그러나 주체성에 대한 믿음이 현실의 문제까지 해소해 주지는 않는다. 당장 AI가 신입 직원의 일을 대체하면서 채용이 줄고 있다. 학교에서는 AI 활용이 능력 평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우리 앞에 던져진 것은 평가의 위기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질문, ‘AI가 일을 대신할 때 인간의 학습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마침 7월 말 발표된 카이 야오(Kai Yao)의 논문 ‘AI가 일을 대신할 때, 학습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가 겨냥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우리가 써온 논거다. “그래도 사람이 배워야 한다”는 주장은 대개 편향, 환각, 불투명성 같은 AI의 결함 목록에 기대왔다. 이 논거는 기술이 좋아질수록 함께 약해진다. 그래서 저자는 방향을 뒤집는다. 시킨 일은 완벽하게 해내는 AI를 가정하고, 그런 AI에게도 넘길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답은 다섯이다. 목표를 세우는 일, 근거를 대는 일, 이의를 제기하는 일, 거부하고 고치는 일, 그리고 참여다. 저자는 이 능력들이 깎여나가는 현상에 ‘역량 해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량 해체는 추측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1월 발표한 ‘디지털 교육 전망 2026’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쓴 학생은 과제 완수에서 48% 더 성공적이었지만, AI를 걷어내자 성과가 17% 떨어졌다. AI로 과제를 끝내는 것과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해외 대학들은 재택 과제 대신 대면 시험과 과정 평가로 돌아가고 있다. 영국 버크벡대학에서는 감독시험을 되살리자 한 강좌의 최우수 등급 비율이 13%에서 45% 이상으로 뛰었다. 재택 에세이 시절의 성적표가 무엇을 쟀는지 되묻게 하는 숫자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교육부는 올해부터 수행평가에 AI 활용 범위를 표기하게 했다. 지난해 제출된 자기소개서의 64% 이상이 생성형 AI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기업들도 지원자 검증 방식을 바꾸고 있다. 방향은 맞다. 하지만 초점이 부정행위 적발에 머물러 있다. 논문의 저자 역시 평가 방식의 재설계에 집중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평가는 언제나 학습을 왜곡해 왔다. 수능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풀이 기술이 학습을 대신했고, 이를 보완하자며 논술 도입이 논의되지만 이 역시 평가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 조선의 과거 시험에도 답안을 대신 짓는 차술이 있었다. ‘경국대전’은 곤장 100대로 다스렸다. 그래도 답안지가 사람을 증명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질문하기 등 역량 키우는 공부 시급

이제 학습의 본질을 원론에서 다시 물어야 할 때다. 인간의 두뇌는 어려운 것에 도전하면서 능력을 키워 왔다. 미적분을 일상에서 쓸 일은 드물다. 그러나 미적분 공부는 우리의 사고력 향상에 커다란 기여를 해 왔다. 지켜야 할 것은 답안지가 아니라 역량이다. AI 시대에 키워야 할 역량(스스로 질문을 세우고, 근거를 대고, AI의 답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먼저 규정해야 한다. 그 역량을 기르는 학습 방법론을 세우고, 평가는 그 다음에 설계하는 순서로 가야 한다.

평가를 위한 학습에서 역량을 위한 학습으로 먼저 전환하는 나라가 AI 시대의 인재를 갖게 될 것이다. 학습의 미래는 감시 카메라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에 도전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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