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김호성의 K-방산 인사이트] K-방산 2.0, ‘운영계획’을 팔아야

입력 2026-08-11 06: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성능보다 후속 지원에 비중 더 커
최소 30년 유지할 정비·부품 공급
공동연구·생산 이어 운용 묶어야

차를 사려는데 두 회사가 찾아왔다고 하자. A사는 동네에 정비소를 새로 지어주겠다고 한다. 대신 그 정비소는 자기 차만 다루고 부품도 자기한테서만 받아야 한다. B사는 조합에 들어오라고 한다. 정비소는 여러 회사가 함께 운영하고, 기술자도 같이 키우고, 부품이 급할 때는 조합원끼리 돌려쓴다. 차가 한 대라면 A사가 편하다. 그런데 차가 열두 대이고 30년을 굴려야 하며, 눈보라 치는 벌판에서 멈추면 큰일 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무기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렇다. 잠수함을 고르는 데 성능보다 정비가 더 중요할까 싶지만, 현지 보도로 알려진 캐나다의 평가 기준에서 잠수함 성능은 20점, 수십 년간 정비와 부품 공급을 뜻하는 유지지원은 50점이었다. 북극과 세 대양을 지켜야 하는 나라가 최대 열두 척을 들여오는 일이다. 캐나다가 본 것은 잠수함 한 척의 성능표가 아니라 함대의 30년 운영계획이었다. 지난 7월 6일 캐나다 정부는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를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오션을 예비공급자로 선정했다. 최종 계약은 남아 있다. 다만 이 결과를 성능의 패배로만 읽어서는 곤란하다. 동맹과 현지 산업, 후속지원까지 한 묶음으로 내놓아야 하는 시장으로 바뀌었다는 신호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요즘 자주 들리는 SAFE는 ‘유럽안보행동’의 영문 약자로, 유럽연합(EU)이 회원국의 공동 무기 구매에 최대 1500억 유로를 장기 저리로 빌려주는 제도다. 한국 무기의 수출을 막는 금지법은 아니다. 다만 이 돈을 쓰는 사업은 부품 원가의 65% 이상을 EU와 유럽경제지역, 우크라이나 등 적격 공급망에서 채워야 한다. 싼 돈을 빌려주면서 유럽의 공장과 일자리를 키우라고 조건을 붙인 것이다. 관세가 아니라 돈의 사용설명서에 가깝다.

앞서 비유하자면 유럽은 지금 조합을 만드는 중이고, 조합원에게만 대출해주겠다는 얘기다. 캐나다는 지난 2월 EU와 별도 협정에 서명해 비유럽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이 조합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도 완제품만 실어다 파는 방식으로는 불리해진다. 폴란드 천무 사업이 현지 조립과 합작 생산으로 나아간 것도 같은 흐름이다. 물론 공장 하나 세웠다고 유럽산이 되지는 않는다. 부품 원산지와 지배구조 같은 조건까지 맞춰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나토 방산포럼에서 제안한 ‘한·나토 방위산업 파트너십 2.0’도 이 방향이다. 함께 연구하고, 함께 생산하고, 함께 운용하자는 구상이다. 필자가 보기에 세 동사 가운데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이 마지막 ‘공동 운용’이다. 필자는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의뢰로 국방 MRO(유지·보수·정비) 수출 확대 방안을 연구하며 138개국의 자료를 들여다봤다. MRO란 무기를 판 뒤 부품 공급과 정비, 성능개량을 책임지는 후속시장이다. 결과는 분명했다. 가장 확실한 기회 16건 가운데 14건이 우리가 이미 수출한 장비의 후속정비였다. 반면 여건이 좋아 보이는 46개국 중 실제 일감이 확인된 곳은 19개국뿐이었다. 우호관계가 곧 시장은 아니라는 뜻이다.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하다. 무기 한 대의 평생 비용을 100으로 놓으면 사는 데 20~30, 운용과 정비에 60~70이 든다. 새 고객을 찾는 것보다 이미 해외에 깔린 K2와 K9, FA-50, 천궁을 30년 책임지는 편이 더 크고 안정적이다. 그래서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먼저 무기 판매와 30년 운용 계약을 처음부터 묶고, 부품 수량이 아니라 장비 가동률을 보장해야 한다. 다음으로 현지화의 선을 그어야 한다. 조립은 나가더라도 설계와 시험, 핵심 소프트웨어와 정비 데이터는 국내에 남기고 중소기업의 몫도 계약 단계에서 챙겨야 한다. 끝으로 수출금융과 절충교역, 인력 양성의 무게중심을 계약 체결이 아니라 계약 이후 30년으로 옮겨야 한다.

1막의 K-방산은 성능과 가격, 빠른 납기로 이겼다. 좋은 차를 싸게 빨리 만들어 주면 됐다. 2막은 다르다. 제도를 읽고 현지와 함께 만들며, 판 뒤의 30년까지 책임지는 나라가 이긴다. 정비소를 지어주고 떠나는 회사가 아니라, 조합에 들어가 함께 기술자를 키우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 그 운용을 산업으로 만들 때 K-방산 2.0은 구호가 아니라 수익과 일자리, 기술로 남는다. 다음 수출품은 무기 한 대가 아니라 그 무기의 30년이어야 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단독 한국 드론기술, 우크라 전장서 시험 중…“스타트업 여러 곳 참여”
  • 美 미사일 재고 ‘빨간불’…K방산 북미 진출 기대
  • KBO 폭염 '여름방학' 끝…프로야구 갈 길 멀다 [해시태그]
  • 빅뱅 컴백하고 튜이드 데뷔하고⋯K팝 '몇 세대'세요? [엔터로그]
  • "이상적인 자녀 수는 2명"…현실은 [데이터클립]
  • 개미 울린 레버리지 ETF…월가는 변동성서 새 수익 기회
  • '매수 사이드카' 터진 코스닥 6.9% 껑충…반도체 소부장·바이오가 끌었다
  • SK하이닉스 ‘자사주 성과급’ 갈등 격화…통합노조 출범 움직임
  • 오늘의 상승종목

  • 08.10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0,395,000
    • -1.18%
    • 이더리움
    • 2,648,000
    • -1.96%
    • 비트코인 캐시
    • 300,400
    • -1.18%
    • 리플
    • 1,428
    • -2.33%
    • 솔라나
    • 107,600
    • -0.92%
    • 에이다
    • 271
    • -2.87%
    • 트론
    • 467
    • +0.86%
    • 스텔라루멘
    • 228
    • -0.44%
    • 비트코인에스브이
    • 20,050
    • -1.04%
    • 체인링크
    • 11,670
    • -0.43%
    • 샌드박스
    • 57.91
    • -1.66%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