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트 버전은 최신 HW4용 소프트웨어의 판단 능력을 구형 하드웨어의 연산 성능에 맞춰 압축한 것으로, 복잡한 도심 주행과 돌발 상황 대응에서 정식 버전과 성능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성능을 깎아낸 버전을, 한국에서의 검증 기간도 없이 출시 5년이 넘은 구형 차량에 얹었다. 게다가 그 이전에 국내에서 감독형 FSD를 굴린 차량은 8개월간 약 900여 대에 불과했다. 미국은 수백만 대가 수년간 쌓은 데이터로 시스템을 학습시켰다지만, 한국의 도로 조건은 미국과 다르다. 검증이 불충분하면 사고는 예상이 아니라 예약일 수 있다.
문제는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물을 틀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촉법소년’과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7년에 걸쳐 자율주행 자동차법 제정, 자동차 손해배상보장법 개정 및 도로교통법을 개정했으나, 사고조사위원회와 자율주행 정보기록 장치 의무는 모두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를 전제로 설계됐다. 테슬라 FSD는 법적으로 레벨2 ‘운전자 보조’라서, 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아니고, 상세 주행 판단 기록을 남길 의무도 없다. 정부가 결함조사를 시작하면,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나, 제재가 약하고 조사 밖의 개별 사고에서 운전자와 피해자가 데이터를 받아낼 법적 수단이 없다. 그리고 레벨2에서 사고 책임은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돌아간다. 조사할 수 없고, 자료를 받을 수 없고, 책임은 소비자가 진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2021년부터 상시명령(SGO)을 통해 오토파일럿 같은 레벨2 주행 보조 차량의 사고까지 제조사가 인지 후 기한 내에 정부에 의무 보고하도록 강제하고, 보고 내용을 상시 공개한다. 미보고 및 허위 보고에는 최대 1억3500만달러, 우리 돈 약 1900억원 규모의 제재가 걸려 있다. 그 강력한 법규 아래서도 테슬라는 2025년 제도 개정 이후 사고 경위 등 핵심 항목을 영업비밀이라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그물 사이로 빠져나갈 것도 없이, 그물 자체가 없다. 레벨2 사고를 제조사가 정부에 보고할 의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제도는 사고가 난 뒤 조사위원회가 자료를 ‘요청’하는 수동적 구조이고, 그마저 레벨3 이상에만 적용되며, 수집된 정보를 상시 공개하는 데이터베이스도 없다. 테슬라 FSD가 한국 도로에서 사고를 내도, 테슬라가 국토교통부에 보고할 법적 의무는 없는 것이다.
지금 국내에서 팔리는 테슬라의 99%는 중국산이다. 중국산 모델3·Y는 자유무역협정(FTA) 특례 대상이 아니어서 아직 FSD가 막혀 있지만, 테슬라가 국내 안전기준 자기인증을 마치고 배포를 선언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규제가 시장을 뒤따라가다 대형 사고를 치른 뒤에야 법을 고치는 일을, 우리는 최근 플랫폼 산업에서 목격했다. 제2의 쿠팡 사태를 도로 위에서 반복할 것인가. 도로 위의 사고는 개인정보 유출과 달리 사람의 목숨으로 값을 치른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보행자다. 자율주행 기술의 안전성은 차 안의 편의가 아니라 횡단보도 앞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지로 증명되어야 한다.
대책은 긴급하고,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레벨2 첨단조향시스템에 대한 국내 안전기준을 조속히 제정해 자기인증의 근거 기준부터 만들어야 한다. 둘째, 레벨2라도 주행보조 기능이 개입한 사고에 대해서는 제작사의 주행 데이터 제출 의무와 조사 근거를 법제화해야 한다. 셋째, 대규모 소비자 피해에 대응할 집단적 구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FSD 환불소송도 98명이 개별 원고로 묶인 공동소송이다. 사고가 난 뒤에 만든 법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붙는다. 그 이름이 생기기 전에,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