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이 아스트로파지라는 단세포 생명체에 ‘감염’되어 빠른 속도로 식어가고 있다. 수십 년 내에 지구는 인류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추워질 것이다. 주위의 다른 별들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인다. 그런데 타우세티라는 별 하나만 멀쩡하다. 그래서 지구는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탐사선을 보낸다. 12광년 거리다.
영화는 그 우주선의 승무원 라일랜드 그레이스가 동면에서 깨어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는 처음엔 자신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조금씩 기억해 낸다. 지구에서 있었던 일들을 영화는 중간중간 보여준다. 다만 그것이 그레이스의 주관적 회상인지 아니면 전지적 시점에서 보여주는 건지 모호한 면은 있다.
깨어날 때 그의 인지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기계가 “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묻는다. 그런데 아직 정신이 덜 든 그가 신음하자 “오답입니다” 하고는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좀 멍청한 것 아닌가? 인공지능에 대한 나의 눈이 근래 너무 높아진 건가?(영화의 원작 소설은 2021년이다.) 그렇다 해도 성간 우주선을 만들 정도의 문명인데 조금 가볍다. 영화 전체의 톤을 예고한다.
승무원이 둘 더 있지만 사망한 걸 발견한다. 인류의 운명이 그의 손에 달렸다. 그런데 구원자가 나타난다. 타우세티에 근접했을 때 다른 우주선을 만나는데, 지구와 같은 운명의 한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타고 있다. 돌로 만든 거미처럼 생겼다. 그레이스는 그를 ‘로키’라 부른다. 그도 혼자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그 둘의 ‘버디 무비’라 할 수 있다. 나중에 로키가 희생하는 모습을 보일 때나 둘이 포옹할 때 많은 사람이 눈물을 글썽였을 듯하다.
그레이스 역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모든 걸 가볍게 받아내는 태도도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인류가 위기에 처했다는 설정과 어울리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겠다. 다른 인물들은 다들 진지하고, 내용이 과학에 충실하고, 시각 효과들도 사실적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매너는 그것들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느낌이다. 두 공동 감독이 전에 코미디를 주로 만들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해된다.
가벼움은 우주선 장면에서 더 두드러진다. 다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로키와 대화할 수 있는 간단한 컴퓨터 시스템을 만드는데 그 결과, 그는 세련된 영어를 구사하지만 로키는 “나 기쁨” 같은 식의 단순한 대사를 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긴 하지만, 로키를 지적 수준이 낮은 존재로 여기게 만든다. 서양인이 미개발 지역 원주민과 접촉하는 숱한 영화들에서 우리가 봐 왔던 것처럼 말이다.
관련 있지만 조금 다른 아쉬움도 있다. 나는 SF에서 우주의 신비로움, 낯섦 등이 잘 표현되길 기대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외계인이 생김새가 다르고 생물학적으로도 매우 다르지만, 지구에서 문화가 다른 민족과 접촉하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진다. 내가 말하는 게 어떤 건지 예를 들어보겠다.
1972년 러시아 영화 ‘솔라리스’. 전체가 바다로 덮인 행성 솔라리스를 탐사하기 위해 지구에서 보낸 우주선이 그 궤도를 돌고 있다. 그런데 그 우주선의 과학자들이 이상한 경험을 한다. 헛것을 본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 자살한 아내가 나타난다. 그런데 당사자의 눈에만 보이는 그런 게 아니라, 실체가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인다. 같이 토론도 한다. 솔라리스의 바다 전체가 하나의 지적 존재로 여겨진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사실 낯섦의 요소가 없지 않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대화가 지구의 서로 다른 민족 사이의 대화와 비슷하다고 했지만, 정확히 하자면 다른 점이 있다.
컴퓨터가 로키의 말을 번역한 후 그 텍스트를 읽는 것일 뿐, 로키가 직접 영어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구에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서로의 언어를 말할 수 있다. 영화에선 생략되었지만, 원작을 보면 그 이유가 나온다. 로키는 동시에 여러 음정의 소리를 낼 수 있다. 성대가 여럿인 셈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 소리를 흉내 낼 수 없고 반대로 그들도 인간의 말소리를 흉내 내기 어렵다.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물론 공간을 지각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마치 박쥐처럼 음파로 공간을 지각한다. 다만 이런 차이로 인해 더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도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