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대기실 TV

입력 2026-05-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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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동네의원에는 대기실에 TV가 있다. 환자들이 기다리면서 무료함을 달래라고 갖다 놓은 TV다. 우리 의원에도 큰 TV가 있다. 큰 TV를 처음 놓았을 때 나는 뭣도 모르고 클래식 음악 채널이 나오게 했다. 차분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앉아있으면 혈압도 낮아지고, 아픈 곳도 가라앉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바로 어르신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재미없는 음악 말고 드라마 보게 해 달라는 거였다. 어쩔 수 없이 리모컨을 환자들의 손에 맡겼다. 그후로는 진료실에서 대기실에서 들려오는 여러 채널의 다양한 TV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침 드라마는 늘 조마조마하다. 행여 막장으로 치달아 대기 중인 고혈압 환자의 혈압이 오르지나 않을까 마음을 쓴다.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나도 잘 모르는 건강에 관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방금 TV에서 나온 내용을 물어보는 환자들, 이름도 희한한 건강기능식품들은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 간혹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사건이 중계되는 날은 진료실에 있는 나 또한 대기실 TV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다. 언젠가 김연아 선수가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두고 경기를 하던 날, 대기 중인 환자를 호출했는데 들어오질 않으셨다. 환자는 김연아 선수의 경기가 끝나고 진료실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도 밖으로 나가 대기실에 같이 앉았다. 그날 오후 의사와 직원, 환자 모두 김연아 선수의 환상적인 연기를 같이 보았다.

개원의는 토요일에도 진료한다. 주 5일제가 정착된 지 오래지만, 토요일을 쉬면 주중에 직장 때문에 병원에 올 수 없는 분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토요일 오전 대기실 TV에서 여행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 오프닝 음악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비록 몸은 여기 진료실에 있지만 마음은 스위스에도 가 있고, 남미에도 가 있다. 여행에 대한 생각은 벅찬 일상을 잠시 뒤로 하고 쉼과 색다른 경험을 꿈꾸게 해 준다. 오전 진료를 마치면 내게도 평화로운 주말이 시작될 것이다. 어디 근교에라도 갔다 와야겠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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