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가 극장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요즘입니다. 그 중심에는 영화 '살목지'가 있는데요. 최근 2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호성적까지 쓰고 있죠. 특히 '살목지'는 '실제 공간'과 관련된 비하인드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입소문이 맞물리며 젊은 관객층을 빠르게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타이밍입니다. 전통적으로 공포 영화의 '제철'로 여겨지던 여름이 아닌 4월, 비수기로 통하는 시점에서 나온 성과인 점이 눈길을 끄는데요. '공포는 여름에 본다'는 공식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지금, 이 흥행이 일시적인 반짝일지 장르의 흐름을 바꾸는 신호탄이 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2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살목지'는 전날(27일) 4만190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전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이날 기준 '살목지'의 누적 관객 수는 202만5660명을 기록했는데요. 개봉 20일 만에 팬데믹 이후 국내에서 개봉한 호러 장르 영화 중 최고 흥행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한국 공포 영화가 200만 관객을 돌파한 건 2018년 '곤지암' 이후 8년 만이죠.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서는 '왕과 사는 남자'에 이어 두 번째로 200만 고지를 밟으며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살목지'가 주목받는 건 '성지 순례' 효과도 한몫했습니다. '살목지'는 로드뷰에 찍힌 미스터리한 형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저수지로 향한 촬영팀이 검고 깊은 물속의 끔찍한 무언가와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공포 영화인데요. 충청남도 예산군에 위치한 동명의 저수지를 배경으로 합니다.
살목지는 공포 마니아들에겐 이미 호러 스폿으로 잘 알려진 장소입니다. 2021년 MBC 예능 프로그램 '심야괴담회'에서도 관련 괴담이 소개되면서 더욱 이름을 떨쳤죠.
여기에 영화까지 화제를 모으면서 시민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심지어 한밤중 직접 차를 몰고 살목지로 향한 사람도 적지 않은데요. 방문객이 늘면서 예산군이 대책회의를 열고 위험 요소를 점검, 안전사고 예방에 나설 정도였습니다.
한국 공포 영화는 제작 편수 대비 흥행 성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살목지'는 소재와 소비 방식에서 변화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두드러지는데요. 특히 실존하는 장소와 입소문이 결합하면서 영화 관람을 넘어 실제 방문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공포 장르 역시 경험형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극장에서 끝나는 소비가 아니라 관객의 행동까지 이끌어내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점에서 산업적 파급력도 주목할 만하죠.

'살목지'의 흥행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곧 중간고사가 끝나면서 주요 관객층인 10대와 20대가 극장으로 몰릴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흐름을 극장가는 물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공포 장르 신작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살목지'에 앞서 일찍이 포문을 연 건 1일 개봉한 '스크림 7'입니다. 1996년 시작된 '스크림' 시리즈는 호러 장르의 문법을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데요. 그 유명한 고스트 페이스 마스크로 세계적인 팬덤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2월 북미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등 이번에도 팬들의 관심을 끌었죠.
22일에는 '리 크로닌의 미이라'가 개봉했습니다. 뭉친 이들이 남다른데요. '컨저링' 시리즈의 제임스 완 감독과 공포 명가 블룸하우스가 제작을 맡았고'이블 데드 라이즈'(2023)을 연출한 리 크로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미라 소재를 공포 장르로 변주하면서 액션에 초점을 맞춘 '미이라' 시리즈 등과 색다른 매력을 자랑합니다.
6월엔 '백룸'이 개봉합니다. 백룸은 무작위로 연결된 방이 끝없이 이어진 비현실적 공간인데요. 2019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괴담을 미국의 10대 유튜버인 케인 파슨스가 영상으로 제작하며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그는 파운드 푸티지('우연히 습득한 영상'이라는 설정을 내세워 실제 기록처럼 보이게 구성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일종) 형식의 단편으로 백룸 시리즈를 올렸는데, 이 시리즈는 현재 2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 중입니다. 유사한 괴담은 물론 백룸을 소재로 하는 게임도 활발히 출시되면서 현대 공포 장르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제작되는 영화 '백룸'의 메가폰도 케인 파슨스가 잡았습니다. 여기에 영화를 위해 실제 3만 평방피트 규모의 백룸 세트를 직접 지은 것으로 알려지는가 하면 실제 일부 스태프가 촬영 중 길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서 팬들의 기대가 높아지는 중이죠.
OTT도 빠지면 서운합니다.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리고'는 소원을 이뤄주는 애플리케이션 '기리고'의 저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고 받은 고등학생들이 그 저주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인데요. 공개 이틀 만에 국내 넷플릭스 시리즈 톱10 정상에 올랐습니다.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넷플릭스 TV쇼 부문 글로벌에서도 3위를 기록 중이죠.

최근 공포 장르의 작품 공개가 두드러지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과거 극장 중심 시장에서는 공포 영화가 여름 성수기에 맞춰 집중적으로 개봉하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졌습니다. 더운 날씨를 잊을 수 있는 데다가 방학·휴가 시즌 관객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굳어진 일종의 공식이었달까요.
하지만 최근에는 개봉 전략이 훨씬 유연해졌습니다. 각종 OTT 플랫폼을 통해 언제든 공포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특정 계절에 맞춰 소비가 집중되는 흐름 자체가 약해진 영향이 있는데요.
특히 대형 텐트폴 작품이 몰리는 성수기 7~8월을 피해 4~6월 사이 먼저 관객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낮은 공포 영화 특성상 상영관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을 줄이고, 장르 선호 관객을 선점하면서 여름까지 이어지는 장기 흥행도 겨냥하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죠.
이에 '살목지'의 흥행은 단순히 한 작품의 성공을 넘어 공포 장르를 둘러싼 산업 구조와 관객 소비 방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히는데요. 과거처럼 여름에만 '반짝'하는 장르가 아니라 플랫폼과 전략에 따라 언제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