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장가를 간 지인은 출산도 늦어서 아들이 이제 7살이다. 맞벌이하느라 아들내미를 친어머니가 봐 주신다고 한다. 할머니로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이지만, ‘미운 7살’에 천방지축 사내아이니 육아의 고단함은 ‘안 봐도 비디오’다. 더구나 할머니가 무슨 얘기를 해도 손주 녀석은 콧등으로 듣는지 도통 말이 안 통한다고 한다. 꾹꾹 참고 있던 어머니가 어느 날 “애가 너무 말을 안 듣는다.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 된다”고 속내를 꺼내자 지인은 “선진국 시민을 개발도상국 시민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후진국 시민이 이해하겠느냐. 애초에 이해하시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라”며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짧은 대화에는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세대 갈등의 본질을 찌른다. 세대는 단순한 나이의 구분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대의 상황 속에서 형성된 ‘경험의 층위’다. 산업화와 압축 성장을 통과한 세대, 외환위기의 충격을 견딘 세대,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는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를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청년층은 기성세대를 ‘기회 독점 세대’로, 중장년층은 청년세대를 ‘노력보다 조건을 탓하는 세대’로 보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 간극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5 사회문제 인식 보고서’에서는 응답자의 85.7%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갈등을 주요 사회 문제로 꼽았다.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세대 문제를 구조적 갈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체감 온도는 세대별로도 다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청년층일수록 세대 갈등을 더 강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갈등의 원인에 대해서도 윗세대는 개인의 노력 부족을, 아랫세대는 구조적 불평등을 더 크게 지목했다. 같은 현실을 두고도 해석의 좌표가 전혀 다른 셈이다.
이 차이를 더욱 벌려놓는 것은 경제적 조건이다. 자산 가격 상승은 세대 간 격차를 고착화했고, 부모 세대가 경험했던 ‘성장의 사다리’는 다음 세대에게는 점점 사라진 ‘신화’처럼 인식되고 있다. 취업과 주거, 교육을 둘러싼 불안은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 상대 세대에 대한 불신으로 번진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과 문화의 변화까지 겹치며 소통 방식과 가치관의 충돌은 일상화됐다. 그래서 같은 조직 안에서도 일하는 방식과 소통 방식이 빈번하게 충돌한다. ‘꼰대’와 ‘MZ’라는 낙인이 서로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는 순간, 이해의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하지만 세대 갈등을 ‘누가 더 옳으냐’의 문제로 접근하는 순간 해법은 멀어진다. 지금의 갈등은 특정 세대의 태도나 성향보다 각 세대가 놓인 구조적 조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서로를 ‘틀린 존재’로 규정하는 대신 ‘서로 다른 시대의 산물’로 인정하려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할머니와 손자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이해하려 애쓰다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 자체를 인정하고 공존의 해법을 찾는 일이다. 세대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사회의 균열이 될 수도, 균형이 될 수도 있다.
김동선 에디터 겸 사회경제부장 matthe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