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딜링룸 축포 속 은행의 역설

입력 2026-03-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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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활황을 맞은 금융권의 풍경이 한층 화려해졌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딜링룸(Dealing Room)을 전면에 내세우며 외환·채권·파생상품 운용 역량을 강조한다. 대형 스크린과 실시간 데이터, 수조 원 단위 자금을 굴리는 딜러들의 모습은 ‘자본시장의 심장’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코스피 5000, 6000이라는 상징적 국면에서 ‘자본시장 중심에 선 은행’ 이미지를 각인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같은 딜링룸 축포 뒤에는 은행업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는 묘한 아이러니가 자리 잡고 있다. 시장이 뜨거워질수록 은행의 본업은 오히려 흔들린다는 점이다. 코스피 상승 국면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자금 이동이다. 금리가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환경에서 투자 매력이 높아지면 예·적금에 묶여 있던 자금은 빠르게 증권시장으로 이동한다. 이른바 ‘머니무브’다. 은행으로서는 저원가성 예금이 빠져나가고 조달 비용이 높아지면서 핵심 수익원인 예대마진(NIM)이 압박받는다.

문제는 이 흐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라는 데 있다. 비대면 계좌 개설과 모바일 트레이딩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자금 이동의 속도와 규모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증시가 활황일수록 은행은 ‘고객의 돈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역설에 놓인다.

수혜 방향도 명확하다. 거래대금 증가에 따른 수수료 수익, 신용공여 확대에 따른 이자 수익 등 증권사들은 직접적인 실적 개선 효과를 누린다. 은행의 경우, 딜링룸을 통한 시장 운용 수익이 일부 보완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예금 이탈이 가져오는 구조적 수익 압박을 대체할 수는 없다. 딜링룸의 불빛이 밝아질수록 예금 창구는 한산해지는 셈이다.

최근 은행권이 처한 환경은 녹록지 않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국의 관세 정책, 금리·환율 변동성 확대 등 대외 변수는 신용손실 확대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건전성 지표는 이미 악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무수익여신은 3조8468억원으로 전년 대비 21% 증가했다. 특히 기업 부문 부실이 두드러지며 중소기업 연체율이 큰 폭으로 뛰었다. 예금 이탈과 자산 건전성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구조다. 게다가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로 대출 확대도 제약을 받는다. 전통적인 은행 모델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결국 해법은 수익 구조의 재설계다. 은행이 단순히 자금을 보관하는 곳에 머무르는 한 머니무브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고객 자금을 ‘지키는 금융’에서 ‘불리는 금융’으로 전환해야 한다. WM과 IB, 시장 운용 역량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이를 고객 서비스로 연결할 때 딜링룸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실질적인 경쟁력이 된다. 동시에 플랫폼 경쟁력 강화와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 확대를 통해 고객 접점을 넓히는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

코스피 활황은 금융권에 기회이자 시험대다. 흐름을 읽지 못하면 은행은 자금이 빠져나가는 통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자금을 붙잡는 금융에서 자금을 움직이고 설계하는 금융으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다.

다만 이 변화는 은행의 노력만으로 완성되기 어렵다. 금융 산업은 인허가와 규제가 촘촘하게 얽혀 있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신속히 도입하기 쉽지 않다. 플랫폼 기반 서비스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려면 혁신금융 제도 등 규제 환경 역시 보다 유연하게 작동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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