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이 익숙한 풍경 속에는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숨어 있다. 오늘날 정체성은 더 이상 개인의 내면 성찰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방대한 행동 데이터와 추천 시스템의 피드백을 매개로 형성되는 ‘알고리즘적 자아’가 일상적인 자기 이해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추천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소비하며, 선택의 폭이 점차 좁아지는 디지털 스티어링(digital steering)에 노출된다. 겉으로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설계한 경로를 따라 선호가 서서히 고착되는 구조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개인화 환경이 오히려 자신의 판단이 더 정확해졌다는 착각을 강화한다는 사실이다. 2025년 오하이오 주립대의 인지심리학자 바그(Bahg)는 알고리즘이 정보를 선별해 보여줄 때 사람들의 판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실험적으로 검증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실제 세계와 무관한 가상의 대상을 제시하고, 이 대상들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를 학습하도록 했다. 이때 한 집단에게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일부 정보만 반복적으로 노출되도록 제한했다. 그 결과, 이 집단은 전체 정보를 자유롭게 탐색한 참가자들보다 대상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더 많았음에도, 자신의 판단이 매우 정확하다고 믿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 정답률은 낮았지만, “나는 이것을 잘 이해했다”는 확신은 오히려 더 강했던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정보의 충분성을 스스로 점검하기보다, 이미 선택되어 제시된 정보라는 사실 자체를 신뢰의 근거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이 현상은 일상적인 비유로도 쉽게 이해된다. 한 사람이 특정 국가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스트리밍 플랫폼을 이용할 때, 알고리즘이 초기에 액션 스릴러만 반복 추천한다면 그는 “이 나라 영화는 액션 중심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 결론이 틀렸을 수 있음에도, 알고리즘이 선별한 결과라는 이유로 오히려 더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알고리즘은 지식을 넓히기보다 표본을 좁히고, 그 좁아진 표본 위에서 자신감을 증폭시킨다.
이 지점에서 작동하는 핵심 심리 기제 중 하나가 바넘 효과(Barnum Effect)다. 바넘 효과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다소 모호하고 보편적인 설명을, 마치 나만의 고유한 특성처럼 받아들이는 인지적 오류를 의미한다. 알고리즘 환경에서는 이 효과가 더욱 강력해진다. 추천 시스템은 여기에 “당신의 실제 행동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이라는 외피를 씌운다. 이렇게 개인화된 바넘 효과는 제한된 정보 환경과 결합되며, 자신의 판단과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더욱 단단히 고착시킨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수록 내성의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분을 천천히 탐색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언어로 정리하기보다, 스마트워치의 스트레스 지수나 챗봇이 생성한 리포트로 현재 상태를 확인받는 습관이 자리 잡는다.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체적 능력, 즉 내러티브 에이전시가 점차 기술 시스템으로 외주화되는 셈이다.
결국 문제는 알고리즘이 틀린 정보를 제공해서가 아니다. 부분적인 정보를 완결된 그림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데 있다. 우리는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더 좁은 세계를 더 확신에 차서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데이터의 단면이 아닌 입체적인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저항이 필요하다. 때로는 추천 목록을 벗어나 낯선 선택을 해보고, 자동으로 제공되는 해석 대신 자신의 언어로 경험을 서술하는 연습이 요구된다.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한 거울은 유용하지만, 그 거울 속 이미지가 전부라고 믿는 순간 자아는 단순한 프로필로 환원된다. 알고리즘에 의해 조각된 자아가 아니라 스스로 서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남기 위해,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 선택은 정말 내가 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선택했다고 믿도록 설계된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