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도 소환한 그 감성⋯Y2K, 왜 아직도 먹히냐면요 [솔드아웃]

입력 2026-02-0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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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했던 Year 2000, 이른바 'Y2K' 트렌드가 지금도 곳곳에서 포착됩니다. 한때는 촌스럽다고 여겨졌던 스타일이 다시 등장하는 걸 넘어 벨벳 트레이닝복이나 펄 립글로스, 유선 이어폰 같은 요소들은 더 이상 '복고'라는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소비되는 모습이죠.

지금의 Y2K는 2000년대 초반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는, 픽셀·저화질·오류 같은 요소를 일부러 강조하며 새로운 감성으로 비트는 흐름에 가까운데요. 깔끔하고 선명한 것보다 투박하고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오히려 더 세련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2026년의 Y2K는 '돌아온 유행'이라기보다 하나의 기본값처럼 느껴집니다. 유행의 끝을 논하기보다는, 왜 이 감성이 계속해서 호출되는지에 시선이 옮겨가는 이유죠.

▲키키의 '404 (New Era)'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출처=키키 공식 유튜브 채널)
▲키키의 '404 (New Era)'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출처=키키 공식 유튜브 채널)

잘파가 말아주는 그 시절 맛!

최근 Y2K 흐름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는 그룹 키키(KiiiKiii)입니다.

지난해 3월 데뷔곡 '아이 두 미(I DO ME)'로 등장한 키키는 데뷔와 동시에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키키는 정식 데뷔 전 뮤직비디오를 선공개하면서 화제를 모았데요. 감각적인 비주얼, 청량하면서 명랑한 콘셉트를 선보이면서 젠지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주목받았죠.

다만 인기를 끈 콘셉트만을 고수한 건 아닙니다. '아이 두 미'가 수록된 첫 미니앨범 '언컷 젬'(UNCUT GEM)에는 힙합, EDM의 경계를 허문 'BTG', 808 베이스와 빈티지한 신디사이저 사운드로 위트를 더한 '그라운드워크(GROUNDWORK)'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수록됐고요. 시티팝, 레트로 신스팝이 어우러진 디지털 싱글 '댄싱 얼론(DANCING ALONE)'에서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리스너들의 귀를 사로잡기도 했죠.

지난해 각종 K팝 시상식에서 7개의 신인상을 거머쥔 키키는 올해 또 한 번 강렬한 변신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지난달 26일 두 번째 미니앨범 '델룰루 팩(Delulu Pack)'을 발매하고 기세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타이틀곡 '404 (뉴 에라)(404 (New Era))'는 UK 하우스와 개러지 사운드의 경쾌한 리듬 위에 멤버들의 파워풀한 래핑과 섬세한 보컬이 어우러진 곡으로, 키야와 이솔의 중저음 도입부부터 강력한 중독성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데뷔곡에서부터 '난 내가 될 것'이라고 외쳐온 이들의 메시지는 이번 앨범에서 한층 더 선명해졌습니다. 웹사이트에서 페이지를 찾을 수 없을 때 나오는 오류 코드 '404 Not Found'를 연상케 하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키키의 매력 중 하나인 '정답 없는 자유로움'을 한껏 담아냅니다. 멤버들의 실제 어린 시절 모습을 담으면서 '디바'를 꿈꾸던 그 시절을 보여주고요. 'everybody dance'라는 문구가 적힌 슬리브리스, 핫핑크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열정적으로 춤추는 하음의 모습은 2000년대 등장한 댄스 게임 '저스트 댄스' 속 한 장면, 이보다 앞선 과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에어로빅 비디오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키키는 음악방송 무대에서도 벨벳 트레이닝복 착장으로 등장해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강풍기 연출까지 더해지면서 '그 시절' 감성을 키키만의 매력으로 해석했습니다.

'404 (뉴 에라)'는 발매 이후 음원 플랫폼 차트 순위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5일 오후 기준 멜론 톱100 차트에서는 8위를 찍었는데요. 톱100 차트에서 최고 10위를 기록한 바 있는 '아이 두 미'를 뛰어넘은 기록입니다. 6일에는 멜론 일간 차트에서 19위를 기록, '아이 두 미'의 일간 차트 최고 성적이었던 14위 이상을 넘보고 있습니다.

▲패리스 힐튼. (EPA/연합뉴스)
▲패리스 힐튼. (EPA/연합뉴스)

메이크업도 그 시절로…프로스티드 립, 뭔데?

이런 장면은 키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길거리 곳곳에서도 Y2K 아이템은 더 이상 특별한 콘셉트가 아닌 일상 속 요소로 소비되고 있는데요. 디지털카메라나 유선 이어폰처럼 한때 추억 속 물건으로 여겨졌던 아이템의 부상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트렌드는 '프로스티 립(Frosted Lips)'입니다. '아이시 립(Icy Lips)'으로도 불리는 이 메이크업은 지난해 말부터 해외 잘파 세대를 중심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케이트 모스나 패리스 힐튼이 즐겨 바르던 '진주 광택' 립 제품이 다시 소환된 겁니다.

이 트렌드의 핵심은 입술을 핑크 새틴 발레 슈즈처럼 매끈하고 은은하게 반사되는 질감으로 연출하는 데 있습니다. 촉촉한 글로스보다는 프로스티하거나 쉬머한 텍스처를, '클린 걸' 메이크업의 물기 가득한 광보다는 실키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특정 제품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품절 대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로레알의 립스틱 '발레리나 슈즈' 컬러인데요. 지난해 겨울, 인플루언서 헤일리 슬러스가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영상으로 틱톡에서 25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이후 북미를 중심으로 인기가 확산했습니다.

미국 패션 매체 글래머에 따르면 로레알 파리 '리그 오브 엑스퍼츠' 소속 셀러브리티 메이크업 아티스트 앨런 아벤다뇨는 "Y2K 트렌드가 이 메이크업을 전면으로 끌어올렸고, 틱톡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며 "2026년에는 글로우한 피부 표현이나 도우인(Douyin) 메이크업 같은 다른 트렌드에도 새로운 차원을 더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소화하기 쉽지는 않은 컬러인 탓에 일부 젊은 세대는 틱톡을 통해 "이런 색상의 립 제품이 유행했다는 걸 믿을 수 없다", "내가 본 색깔 중 가장 못났다" 등의 혹평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이 같은 영상들도 웃음을 자아내며 SNS에서 수만~수십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처=키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출처=키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Y2K가 클래식(?)이 된 이유

이쯤 되면 질문은 'Y2K가 왜 유행하느냐'가 아니라, '왜 이렇게 오래 남아 있느냐'에 가까워집니다. 2026년의 Y2K는 더 이상 새롭지도, 낯설지도 않은데요. 대신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취향의 기본값처럼 작동하죠.

Y2K 감성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하나의 구조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맞물려 있습니다. 디지털 과잉 시대가 낳은 심리적 보상 욕구, 그리고 이를 빠르게 포착해 재가공한 산업의 전략적 대응인데요.

먼저 잘파 세대에게 Y2K는 가까운 과거가 아닙니다. 경험하지 않았거나 기억 속에 없는 시기인데요. 그럼에도 이들은 2000년대 초반의 감성에서 묘한 친밀감을 느낍니다. 과거를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향수를 느끼는 현상, 이른바 '아네모이아(Anemoia)'가 작동하는 지점인데요. 고해상도 화면과 인공지능(AI) 제작·보정 이미지가 일상이 된 환경에서 유선 이어폰의 꼬인 선이나 디지털카메라의 거친 노이즈는 오히려 신선한 물리적 자극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과정에서 '불완전함'은 결함이 아니라 미감이 되는데요. AI와 필터로 다듬어진 완벽한 이미지에 피로를 느낀 대중은 오류 코드, 화면 깨짐, 저화질 같은 요소에서 오히려 날것의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Y2K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 역시 과거의 스타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완벽함에 대한 저항의 언어로 기능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죠. 여기에 과거 유행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비트는 소비 방식이 결합하며 Y2K는 각자의 스타일로 재창조됩니다.

산업의 대응 역시 빨랐습니다. 패션·뷰티 업계는 Y2K를 단순한 복고 아이템 판매가 아닌 새로운 가치 창출의 도구로 활용했죠. 기능적으로는 퇴보한 유선 이어폰이나 저사양 디지털카메라는 '아날로그 테크 액세서리'로 리브랜딩됐고, 저화질과 노이즈는 오히려 프리미엄 감성으로 포장됐습니다. 구세대 아이폰이 수십만 원에 거래되는 사례도 익숙하죠.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Y2K를 의상 콘셉트에 국한하지 않고 '추구미'로 확장하며 팬덤의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Y2K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 기술과 아날로그 감성이 결합된 제3의 미학으로 진화한 모양샌데요. Y2K가 유행의 끝을 논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클래식처럼 계속해서 호출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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