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대화→주주제안…연기금 주주활동 단계 진입
주주권 행사 폭 넓어져…국민연금 의결권 영향력 커진다

국민연금이 보유 지분의 투자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전환하는 사례를 잇따라 늘리며 주주권 행사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대규모 지분을 보유한 기업을 대상으로 배당 정책과 이사회 구성 등 핵심 사안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가능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일 국민연금공단이 공시한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 29일 KT 지분 0.62%(155만6640주)를 처분했다. 이에 따라 KT 지분율은 7.65%에서 7.05%로 낮아졌지만, 보유 목적은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지분율 7% 이상을 유지한 상태에서 투자 목적을 일반투자로 전환한 만큼, 국민연금이 KT를 상대로 보다 적극적인 주주활동에 나설 수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지분율에 따라 국민연금이 행사할 수 있는 주주권의 범위는 단계적으로 넓어진다. 1~5% 구간에서는 이사 선임 찬반 등 통상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되 공시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 5% 이상이 되면 대량보유 공시 의무가 생기고, 보유 목적(단순투자·일반투자·경영참여)을 명시해야 한다. 이 가운데 5% 이상이면서 ‘단순투자’ 목적일 경우 배당 수령과 의결권 행사 등 기본 권한에 그치지만, ‘일반투자’로 전환하면 정관 변경, 이사 선임·해임 청구, 배당 정책 제안 등 보다 적극적인 주주제안이 가능해진다. 10% 이상 보유 시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수탁자 책임 활동의 핵심 대상이 되며, 비공개 대화나 주주제안 등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가 현실적인 수단으로 작동한다.
이번 조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민연금은 KT를 ‘비공개대화 대상 기업’으로 지정하고, 해킹 사고를 비롯한 주요 현안에 대해 비공개 대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비공개 대화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주요 주주로서 주주제안 등 후속 조치에 나설 수 있다. KT는 지난해 8월 불법 기지국 장비를 활용한 범죄로 가입자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가입자는 무단 소액결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사고를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으로 판단해 KT에 대한 단계적 주주활동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KT에 대한 조치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8월에도 현대글로비스와 HMM 등 7개 기업의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전환했다. 기업과의 비공개 대화와 중점관리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주주제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특히 HMM은 최근 본사 부산 이전 논의와 산업은행 주도의 매각 재개 가능성, 해운업 업황 둔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 우려 등이 겹치며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은 HMM 지분을 6% 안팎까지 늘리며 주요 주주로서의 존재감을 키웠다. 보유 지분 확대와 함께 투자 목적을 일반투자로 변경하면서, 국민연금이 HMM의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향후 구조조정이나 매각 추진, 본사 이전과 같은 굵직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불거질 경우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나 공개적 의견 표명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HMM은 KT와 함께 국민연금의 일반투자 전환 이후 주주활동 강화 기조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단순한 의결권 행사에 머물던 연기금의 역할이 기업의 중장기 전략과 맞물리며 한층 입체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같은 통신업계에서는 SK텔레콤 역시 해킹 사고와 관련해 비공개대화 대상 기업으로 지정된 상태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를 대상으로 일정 기간 비공개 대화를 진행한 뒤,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적극적인 주주활동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단순 투자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주주권 행사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기조 속에서 일반투자 전환이 늘어날 경우, 국민연금의 의결권과 주주제안이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 전략에 미치는 영향도 한층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