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미궁(迷宮) 앞에 서서

입력 2026-01-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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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 원장

앞이 보이지 않았다. 미궁처럼 복잡한 길을 따라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왔지만 더 이상 전진하기가 어렵다.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고, 또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렀고 오래 버티던 팔과 다리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야! 너무 아파요.” 설상가상으로 환자는 고통을 호소하며 점차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전진하느냐 아니면 돌아 나와 후일을 기약하느냐 진퇴양난에 빠진 순간이었다.

“박 선생, 무조건 앞으로만 가려 하지 말고 잠깐 뒤로 물러나요. 그다음에 공기를 빼고 장이 다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요. 그리고 힘을 이용해 밀지만 말고 손목으로 내시경을 비틀면서 각이 진 대장의 굴곡을 넘어 가보세요. 마치 스키를 탄다는 기분으로” 전공의 시절 대장내시경을 처음 배울 때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시던 노하우였다.

대장내시경은 굴곡진 대장을 조금은 뻣뻣한 기구를 이용해 들어가 병변을 찾는 검사법이다. 보통의 대장은 겉으론 비슷한 형태를 가졌지만, 실제 들어가 보면 그 경로와 구불거림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특히 마르고 연세가 드신 분이나, 복부 수술을 받았던 분은 구조가 더 복잡해 내시경 진입이 어렵다. 맹장이란 끝 부위까지 미궁처럼 연결된 대장을 보는 대장내시경 검사는 일단 내시경이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하지만 마치 미로를 연상시키듯 예각이 지거나 꼬여있는 부위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기에 전진하기가 난해하다.

그럴 땐 제자리에 멈춰야 한다. 힘만으로 밀었다간 환자의 고통도 클뿐더러 자칫 장이 찢어지는 불상사가 나기 때문이다. 일단 멈춘 후 힘들게 들어간 내시경을 뒤로 후퇴시키면서 부풀려 놓았던 대장 내강에 있는 공기를 빼고 잠시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만 예각이던 대장이 둔각이 되고 꼬였던 장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다시 내시경을 쉽게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살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힘을 내 전진하려면 오히려 일이 꼬이고, 뒤죽박죽되어 결과가 안 좋아지는 경우를 만난다. 진퇴양난의 길 앞에 서 있다면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갖자.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와 손에서 힘을 빼고 조금은 뒤로 물러나 먼 곳에서 다시 한번 바라보자. 힘을 빼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기다리다 보면 때론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난제가 스르르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도, 또 그동안 한곳에 매몰되어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해답이 행운처럼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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