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폭로라기보다 기록처럼 읽힌다. 격앙된 분노도, 내부 고발자의 영웅 서사도 없다. 대신 반복되는 업무와 숫자, 캘린더를 빼곡하게 채운 회의, 그 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또 다른 회의들 등 누구도 특별히 잔인하지 않은 익숙한 풍경이 등장한다. 이 세계에서 비윤리는 일탈만큼 일상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기에, 이 글은 충격을 주기보다 차분한 조소를 자아낸다. 이미 작동하고 있던 현실을 뒤늦게 문장으로 고정해 놓은 로그 파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글을 쉽게 믿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당 ‘고발’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기보다 사람들이 이미 체감하고 있던 불일치를 설명 가능한 이야기로 정돈했을 뿐이다. 배달이 유독 늦어지는 날이 있다는 느낌. 팁을 줘도 그것이 누구에게 가는지 알 수 없다는 직감. 선의로 지불한 비용이 엉뚱한 곳으로 흡수된 것 같다는 불안. 조각난 의심들은 이 글에서 비로소 자리를 찾아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고발자는 해당 회사가 ‘Desperation Score (절박도 지수)’라는 지표를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 절박하게 일할수록 더 적은 보상을 받아도 버틸 것이라 가정한 인간의 상태를 수치화해, 그 절박함 자체를 배달원 비용 절감의 근거로 삼는 내부 기준을 말하는 것이다. 해당 대목이 강한 반응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지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 말을 전혀 낯설게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절박함이 보호의 이유가 아니라 계산의 근거가 되는 세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적게 받는 구조. 이미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논리를 정확한 이름으로 불러냈기에 이 구체화된 개념은 불쾌할 만큼 설득력을 가진다.
이 고발문이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언어다. ‘Priority Delivery(우선 배달)’, ‘Benefit Fee(혜택 수수료)’, ‘Regulatory Response Fee(규제 대응 수수료)’와 같은 용어들은 배려와 보호를 암시한다. 더 빠르게 해주겠다는 약속, 노동자를 위한 비용이라는 인상,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설명. 그러나 이 글은 이 단어들이 실제로 무엇을 가리는지 보여준다. 우선순위는 속도를 높이지 않고 기준을 낮춘다. 혜택이라는 이름의 비용은 노동자의 보호가 아닌 기업의 방어를 위해 쓰인다. 이 언어들은 거짓말이라기보다 방향을 틀어놓은 표지판에 가깝다. 사람들을 속이기보다는 안심시키는 쪽으로 작동한다.
팁 구조에 대한 서술이 많은 공감을 얻은 이유도 비슷하다. 팁이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보상이 아니라 기업의 비용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흡수된다는 설명은 사람들의 막연한 의심을 구체화했다. 관대함이 반드시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선의가 시스템 안에서 다른 용도로 전환된다는 경험. 이는 특정 서비스업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플랫폼 경제 전반에 깔린 정서다.
이 고발문이 강력한 이유는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에도 있다. 배달 노동자는 물적 자원으로 분류되고, 고객은 심리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조정되며, 엔지니어는 자신이 만든 시스템을 견디지 못해 떠난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이 구조에 포섭된다. 독자 또한 자신이 이 시스템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상, 이 글을 읽으며 무결한 관찰자의 자리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 이는 푸코가 말한 통치의 형태와도 일맥상통한다. 억압과 금지라는 사회적 금기 대신 내세운 관리와 조정을 통해 사람들은 통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통제에 자발적으로 협조한다.
여기서 인지적 부조화는 더 이상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혼자서만 곱씹었을 의심들이 이제는 화면을 타고 빠르게 오가며 시공간의 제약 없이 확장된다. 타임라인을 몇 번만 내려도 사람들은 자신이 안고 있는 걱정과 피로가 나만의 것이 아닌, 공유되고 있는 하나의 갈등과 갈증이라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적인 사회였다면 해결 방안으로 이어질 이 깨달음은 현재 여전히 불안 상태에 고착화되어 있다. 오히려 이러한 연대 의식은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적 회피로 번지며 근본적 원인을 의도치 않게 정상화한다. 모두가 겪고 있다면 개인의 잘못이 아니고,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면 굳이 누군가 나서서 책임질 이유도 사라진다. 인식은 집단화되지만, 오히려 대응은 방향성을 잃는 꼴이다.
이 감각은 코로나 격리 시대를 거치며 결정적으로 강화되었다. 팬데믹 동안 노동과 사회적 소속은 강제로 분리되었다. 일은 계속되었지만 사회는 닫혔다. 집 안에서 수행되는 노동은 생산성을 유지했지만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감각은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기에 처음으로 노동이 사회적 의미 없이도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동시에 노동이 곧 개인의 가치라는 오래된 신화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균열은 이후 플랫폼 노동과 AI 기반 관리 구조를 받아들이는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 상품이 되는 것은 노동자의 시간이나 기술이 아니라, 노동자의 상태다.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 얼마나 오래 접속하는지, 얼마나 쉽게 포기하지 않는지가 ‘가치 있는’ 노동자의 기준이 된다. 그렇기에 AI는 인간의 생산성을 흉내 내기보다 인간의 조건을 분해한다. 이 분해된 조건들은 다시 가격으로 환산된다. 현재 AI는 인간의 완전한 대체보단 인간을 더 잘게 나누고 더 정확히 배치하는 ‘효율성’의 도구에 가깝다. 인간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중심은 아니다. 참여는 요구되지만 귀속은 제공되지 않는다. 역할은 주어지지만 정체성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아렌트가 구분했던 노동과 행위의 경계가 무너진 상태로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활동하지만, 그 활동이 세계를 바꾼다는 대의적 감각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조건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MZ세대의 태도다. 이들은 노동 그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노동을 둘러싼 조직의 언어와 상징 체계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회사 문화, 미션, 성장 서사 같은 표현들은 이들에게 동기 부여의 언어 대신 온라인 공간에서 빠르게 해체되고 조롱받는 관리 담론에 가깝다. 해당 언어가 실제로는 비용 절감과 리스크 관리, 책임의 외주화를 은폐하는 장치에 가깝다는 사실을 비교적 이른 시점에 학습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노동은 자아실현의 장이라기보다, 과도한 개입과 통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건부 협상에 가깝다. 그래서 이들은 조직에 충성하지 않고, 회사를 신뢰하지 않으며, 언제든 관계를 종료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다. 책임 회피라고 보일 수도 있는 이 현상의 실상은 구조를 과도하게 인식한 세대가 선택한 방어적 합리성으로 봐야 적절하다.
이 지점에서 시선은 배달 노동자나 기업 내부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 구조는 특정 직군의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을 이용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확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플랫폼을 통해 무언가를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이 단순한 소비로만 끝나는 일은 전무하다. 무엇을 클릭하는지,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어떤 순간에 반응하는지 같은 선택들은 모두 기록되고 분석된다. 이 흔적들은 데이터로 전환되어 다시 수익 모델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참여하지만, 그 참여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특정한 방향으로 집중된다. 쉬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가치 생산의 회로 안에 들어와 있다. 다만 그 과정이 노동처럼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을 뿐이다.
이 구조가 불편한 이유는 인간을 착취해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구조가 인간에게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학습시킨다는 점이다. 의미 없는 노동, 소속 없는 참여, 과잉된 인식 속의 무력감이 정상 상태가 된다. 시스템은 효율을 요구하면서 인간에게서 점점 더 많은 것을 제거한다. 정체성과 권리와 서사는 비용이 되기 때문이다.
레딧에 올라온 그 글이 사실이든 아니든, 익명의 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진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런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AI로 인해 대체되는 노동력보다 더 불편한 진실은 인간이 인간으로 대우받지 않아도 사회가 아무 문제 없이 작동할 수 있다는 상태가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장 불안한 점은 우리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인식조차 공유되고 소비되며, 특정 집단에게 집중화된 수익 구조의 또 다른 수로로 전락한다. 이 조용한 납득의 상태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가장 정확한 초상일지도 모른다.
저자 소개
반휘은은 글로벌 AI 거버넌스와 신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정책 컨설턴트이자 저술가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디지털 인문학, 미디어철학, AI윤리를 전공하며 석사과정을 마친 후, 뉴욕 유엔본부의 (전)기술특사실 (현)디지털과 신기술사무국(전 Office of the Secretary-General’s Envoy on Technology, 현 Office for Digital and Emerging Technologies)에서 AI 정책 연구와 분석을 주도했다. 안보, 에너지, 노동, 건강, 법의 지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거버넌스를 위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개발했으며 20회 이상의 고위급 자문 회의를 주관하며 AI 정책을 구체화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주요 산업 리더들과 협력하여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표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반휘은은, 디지털 윤리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현재는 AI 거버넌스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