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력 강화 위해 유인책 제시하고
계층·직업별 맞춤형 정책 설계해야

한국의 저출산 대응은 지난 20여 년간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도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합계출산율 0.7이라는 수치는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 국가 존립의 위기를 경고한다. 그럼에도 정책 담론은 여전히 “더 강한 의지”, “더 많은 예산”, “더 촘촘한 복지”라는 익숙한 주문만 반복한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을 의지나 예산의 부족에서 찾는 순간, 정책은 같은 실패의 궤적을 되풀이한다.
저출산 대응 실패의 핵심은 ‘의지 부족’이 아니라 ‘원인 오진’에 있다. 대표적 사례가 ‘출산’을 ‘출생’으로 바꾼 정책 용어의 교체다. 출산이라는 단어가 여성에게 부담을 준다는 문제의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용어를 바꾼다고 출산력(fertility), 즉 ‘아이를 낳을 수 있고 낳게 되는 능력’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출산을 결정하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주거, 고용, 돌봄, 교육, 경력이라는 삶의 조건이다. 용어 전환은 출산의 비용과 위험을 낮추지 못했고, 오히려 정책의 초점을 흐리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비슷한 오류는 성평등 담론에서도 반복되었다. 정부는 “성평등이 높아지면 출산율이 오른다”는 논리를 내세워 북유럽 모델을 정책의 준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는 특정 국가의 역사적 맥락에서 나타난 상관관계를 보편적 인과관계로 오해한 결과다. 북유럽의 출산율은 성평등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거 안정, 장시간 노동의 부재, 공공 돌봄의 질, 교육비 부담 구조가 함께 작동한 결과였다. 반면, 한국사회는 무한 경쟁, 수도권 주거 압박, 불안정 고용, 사교육 부담이라는 복합적 제약 속에 있다. 정책은 이러한 한국의 상황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서구의 개인주의 가족 모델을 한국사회에 무비판적으로 이식하려 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가족에 대한 강한 기대와 계층 하강에 대한 공포, 과도한 교육 경쟁이 존재한다. 제도 몇 가지를 손보는 것만으로 출산 결정이 바뀔 수 없음에도, 정책은 형식적 제도 정비를 성과로 착각했다. 그 사이 출산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또한 저출산을 평균의 문제로 접근한 것도 패착이다. 수도권 청년에게는 주거가, 중소기업·비정규직 종사자에게는 소득과 고용 불안이, 대기업 맞벌이에게는 시간 빈곤이, 지방 청년에게는 일자리와 인프라가 출산의 결정적 장벽이다. 그러나 정책은 ‘청년’, ‘신혼부부’라는 느슨한 범주에 머물렀다. 그 결과 정책 효과는 분산되었고, 누구의 생애 경로도 바꾸지 못했다.
한국사회 저출산 현상의 본질은 “안 낳는다”가 아니라 “끝없이 미룬다”는 데 있다. 결혼을 미루고 첫째아이 출산을 미루는 동안, 가임 연령을 고려할 때 둘째아이 출산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 ‘출산 연기’는 생애주기 전체를 뒤로 밀어낸다. 그럼에도 정책은 출산력 자체를 강화하기보다, 연기 이후를 사후적으로 지원하는 데 머물러 왔다.
이제 정책 목표를 분명히 재설정해야 한다. 목표는 오직 ‘출산력 강화’여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젊은 세대, 특히 가임기 여성에게 자녀를 갖는 것이 인생의 손해가 아니라 가치가 될 수 있도록 삶의 전망을 바꿔야 한다. 가치관은 캠페인이나 교육으로 바뀌지 않는다. 출산 이후의 삶이 안정적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변화한다. 둘째, 사회계층·직업집단·거주지별로 정책을 세분화하고, 집단별 병목을 해소하는 맞춤형 패키지를 설계해야 한다.
한국의 극단적 저출산은 자연발생적 현상이 아니라 오진된 정책이 누적된 결과다. 해법은 명확하다. 출산력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고, 정책 목표를 재설정하며, 개인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을 복원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를 낳는 것이 가능한 사회로 바뀔 때 비로소 한국사회의 출산력은 회복될 수 있다.



